벽돌탑의 도깨비 - 13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by 김수형

벽돌탑의 도깨비 - 13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이방은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잠시 오늘 있었던 일을 회상해보았다.


“사또께 안내하여라.”


관아 문 앞에 다섯 사내가 말에서 내려 마패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시 문을 지키는 수문장에게 서찰이 든 통을 보여주었다. 수문장은 마패와 서찰이 든 통을 보고 이들이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수문장이 잠시 기다리기를 권하고 다른 나졸 한명이 관아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관가 소속 늙은 노비가 대문 밖으로 나와 말을 끌고 가버렸다. 곧 관아 안에서 이방이 뛰어나왔다.


“어서 오십시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또는 잠시 자리를 비웠사오나 곧 돌아오실 겁니다.”


이방은 연신 몸을 구부리며 다섯 사내를 관아 안쪽으로 안내하였다. 다섯 사내는 이방의 안내에 따라 사방을 살피며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이방을 뒤따르던 긴 수염의 사내가 이방에게 상황설명을 부탁하였다.


“시간이 많지 않네. 일단 사또가 올 동안 설명을 하게. 그리고 나졸들을 모으게.”


다섯 사내를 방으로 안내한 이방은 의자에 다섯 사내를 앉히고 최근에 도깨비의 장난으로 고을의 백성들의 원성이 많았으며 며칠 전에는 천지를 진동시키는 소리와 산에 나무가 넘어가고 동물들의 움직임이 이상했던 것을 설명했다. 설명이 끝날 무렵 사또가 방으로 들어왔다.


“벌써 오실 줄은 모르고 잠시 일이 있어 관아를 비웠습니다. 인사 올리겠습니다.”


사또가 인사를 하려고 하자 수염이 긴 사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선 후 손을 들며 인사를 막았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소. 인사는 가면서 합시다. 나졸들을 이끌고 그 소리가 난 곳으로 갑시다.”


다섯 사내가 먼저 방을 나서자 사또가 이방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고 사내들을 뒤따라나갔다. 이방은 사또와 사내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종종 걸음을 쳐 군교에게 나졸들을 모으도록 지시를 했다. 그리고 다시 종종 걸음으로 사또와 다섯 사내 옆으로 돌아와 언제 다녀왔냐는 듯이 걸음걸이를 맞추었다.


“이 고을에 요괴가 살고 있군. 그렇지 않소?”


수염이 긴 사내의 물음에 사또가 이방 쪽을 바라본다.


“네~, 이 고을 사람들은 예로부터 강가 숲속에 사는 도깨비에게 소원을 빌어 왔습니다. 저 숲이 그 숲입니다. 저 숲속에 당나무와 당집이 있는데 그 곳에 소원을 빌면 도깨비가 소원을 들어줬습니다.”


이방이 재빨리 사또의 눈짓에 따라 설명을 하였다. 이방이 손으로 숲 방향을 가리키자 다섯 사내의 눈도 손끝을 따라갔다. 다섯 사내는 좀 전에 타고 온 말의 안장에 사뿐히 올라탔다. 사또는 말을 끌고 나온 관노의 도움으로 겨우 말에 걸터앉았다. 말에 올라탄 긴 수염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것을 왜 아직까지 한양에 보고 하지 않았는가?”


다섯 사내가 부드럽게 말 머리를 숲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동안 사또의 말은 관노가 끄는 방향으로 쉽게 움직이지 않아 사또는 대답을 놓치고 말았다.


“예로부터 해오던 일인지라…….”


이방이 말끝을 흐렸다. 겨우 사또의 말이 숲 쪽으로 방향을 잡자


“제가 부임해온지 얼마 되질 않았습니다만 며칠 전에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들려 아랫것들에게 물어보니 도깨비 이야기를 하지 뭡니까? 그리고 최근에 도깨비의 피해로 보이는 사건들이 있어. 각 마을 촌장들이 일전에 보고를 하였습니다. 도깨비라고 생각하니 아주 큰일 날 일이다 싶어서 한양으로 급히 연락을 한 것입니다.”


사또는 자신이 일을 잘 한다는 것을 자랑하듯이 이방의 말을 낚아채며 말을 했다.


“이 나라는 성리학을 실천하며 사는 나라요. 이 나라에 도깨비 같은 요물이 남아있어서도 안 되며 그 도깨비를 신으로 모시는 것도 국법으로 엄히 다스려야 할 일이요.”


“지당한 말씀입니다.”


사또가 기가 막히게 절묘한 타이밍으로 맞장구를 쳤다. 사또가 다시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떠벌떠벌 긴 수염의 사내에게 보고하는 사이 숲속에 나무가 사방으로 넘어져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마차 한 대가 충분히 다닐 정도로 폭이 넓은 길이 생겨 있었다. 그 길의 저편에 당나무가 작게 보였다.


“이 산은 누구 소유요?”


당나귀를 타고 사또의 말을 끌고 있던 이방이 재빨리 긴 수염의 사내의 말을 받아 대답하였다.


“나라 것입니다.”


“이보시오. 나라님의 땅에 어찌 이런 일이……. 너희는 좌우로 흩어져 도깨비의 소굴로 다가가서 기다리고 있어라.”


“네!”


긴 수염의 사내가 명령을 내리자 다른 네 명의 사내가 둘씩 짝을 지어 말을 두고 좌우로 흩어져 숲으로 사라졌다. 움직임이 무척이나 민첩해 사람의 움직임 같지가 않았다. 사또와 이방은 그들의 움직임에 놀라 멍하니 그들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고 있자 긴 수염의 사내가 재촉하여 나졸들과 함께 도깨비가 만든 거대한 길로 들어섰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자 당나무거리가 나왔다. 돌로 된 상은 부서져 있었고 온전한 것은 당나무와 당집뿐이었다. 긴 수염의 사내는 사또 일행과 함께 계속 숲속 길을 따라 올라갔다. 잠시 후 도깨비의 집에 도착했다. 미리 와 있던 네 사내가 긴 수염의 사내에게


“나으리, 요물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라고 보고를 하자


“음, 나도 느꼈네.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하네. 자네들은 산 위쪽에 있는 흔적을 살펴보고 관아로 오게. 군교는 듣거라.”


“네! 나으리!”


긴 수염의 사내에게서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답을 하고 네 명의 사내는 몇 발짝 땅을 박차더니 몸을 살짝 띄워 숲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사라져버렸다. 긴 수염의 사내는 군교를 쳐다보며


“불을 질러라!”


군교도 앞의 네 사내가 무척이나 멋있게 보였는지 대답을 평소보다 훨씬 큰소리로


“불을 가져오너라!”


하고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나졸들이 막대기에 횃불을 붙여 군교의 들어 올린 손에 전해주자 군교는 성큼 성큼 도깨비의 집으로 다가가 처마 끝에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군교는 횃불을 도깨비집 문 안쪽으로 던지며 뒤돌아서 잠시 전과 같이 성큼 성큼 걸어 사또와 긴 수염의 사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집은 순식간에 타들어 갔고 집 안쪽에서는 알 수 없는 작은 폭발들과 함께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긴 수염의 사내를 제외한 나머지 겁이 많은 관아 사람들은 몸을 조금씩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다. 긴 수염의 사내는 말머리를 돌리며


“사또와 난 저쪽으로 가볼 테니 군교는 나졸들을 데리고 산 아래쪽을 살피시오.”


긴 수염의 사내는 도깨비가 평소에 다니던 길을 가리키며 군교에게 명령을 내렸다.


“네! 알겠습니다. 나으리”


군교는 좀 전과 같이 큰 소리로 대답을 하고 검은 연기를 뒤로 한 채 나졸들을 데리고 숲의 아래쪽으로 이동하였다.


“사또! 이 산은 처음이시오?”


수염이 긴 사내는 사또의 약점을 잡으려고 의도적으로 질문을 하였다.


“네.”


사또가 조그맣게 대답하자 이방을 향해


“이방이 앞장서시게.”


빼빼마른 이방은 신이나 배가 양옆으로 툭 튀어나온 당나귀의 배를 툭툭 차며, 긴 수염의 사내가 타고 있는 탄탄한 근육질의 말을 끌고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 둘을 따라 말머리를 돌린 뚱뚱한 사또는 늘씬한 말을 탔지만 말 타기에 익숙하지 않아 고개가 몸과 반대로 좌로 우로 흔들거렸다. 유유히 흐르는 강을 향하여 내려가는 모습이 조화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무척이나 우스꽝스런 모습이었다.


사또 일행이 얼마간을 내려가자 갈림길이 나왔다. 앞장선 당나귀가 걸음을 멈추고 그 위에 타고 있던 이방이 긴 수염의 사내가 있는 뒤를 돌아보았다. 말을 잘 타지 못하는 사또는 아직 저 뒤쪽에서 겨우 따라오고 있었다.


“갈림길입니다. 오른쪽으로 가면 강변에 도착합니다. 왼쪽으로 가면 다시 당나무거리로 돌아가 당골로 이어집니다.”


이방이 길을 안내하자


“당골로 가세.”


이방은 사또가 늦어지는 것이 걱정이었지만 왼쪽으로 고삐를 당겼다. 당나귀는 싫은 듯 앞발을 몇 번 구른 뒤 당나무거리 쪽으로 움직였다. 뒤늦게 갈림길에 도착한 사또는 말이 왼쪽으로 몸을 틀자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이방~, 에효~”


사또는 큰 소리로 이방을 불러서 천천히 가고 싶었지만 한숨만이 흘러나왔다. 무거운 사또 때문에 말도 사또만큼 힘들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말이 속도를 내면 더욱 괴로워지는 것은 사또였다.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아는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그 리듬에 맞추어 몸을 흔들거렸다. 저만치에 수염이 긴 사내와 이방이 당나무 아래에 도착해 있었다. 그들 앞에는 나졸로 보이는 사람이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들은 나졸들과 헤어져 당나귀와 말을 달려 산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사또는 멀미가 나고 힘이 들어도 이제는 말을 달리 수밖에 없었다. 사또가 고삐를 당기며 말을 재촉하자 말이 리듬감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사또도 리듬감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염이 긴 사내와 이방이 당나무거리에 도착하자 산 아래쪽에서 숨이 끊어지도록 뛰어올라오는 나졸이 있었다. 달려오다 잠시 서서 두 눈으로 둘을 확인하더니 머리를 한번 숙이며 한숨을 몰아쉬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헉~, 헉~, 이방어른! 저 아래에 당골네가 입이……. 헉~, 헉~”


답답해진 이방이


“천천히 이야기 해봐라. 당골네가 어떻게 되었다고?”


허리를 굽히고 손으로 무릎을 짚고 서서 숨을 고르던 나졸이


“당골네가 입이 없어진 채로 당골 입구에 나타났습니다. 휴~, 군교나리가 이방어른을 빨리 찾아보라고 해서 이렇게 올라왔습니다.”


이방이 고개를 꺄웃거리며


“입이 없어졌다고 그게 무슨 소리냐?”


나졸이 답을 하기 전에


“일단 내려가 보세.”


수염이 긴 사내가 말을 달려 아래로 내려갔다. 이어서 당나귀로 이방이 뒤따라가고 나졸이 다시 한 번 머리를 휙 하고 한번 돌리며 한숨을 내쉬고 따라 뛰어 내려갔다. 수염이 긴 사내가 군교와 나졸들의 무리에 도착했다.


“어찌된 일이냐?”


말을 급히 세우며 동시에 군교에게 물으니


“당골에 사는 무당인데 입이 없어져버렸습니다. 보십시오. 입이 없질 않습니까?”


긴 수염의 사내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는 당골네를 쳐다보았다. 긴 수염의 사내가 말에서 내려 성큼 당골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입으로 중얼중얼 주문을 외더니 당골네의 왼쪽 귀밑으로 오른 손을 가져가 살점을 잡고 입 가운데 쪽으로 잡아당긴 후 다시 오른쪽 귀밑까지 잡아당기자 얇은 살가죽 같은 것이 당골네의 입에서 떨어져나갔다. 수염이 긴 사내가 계속 주문을 중얼거리자 손에 잡혀있던 살가죽이 꿈틀거리더니 확하고 불이 붙어 사라져버렸다. 나졸들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한낱 눈속임이다. 무당은 내말에 거짓 없이 답하여라. 무슨 일이 있었느냐?”


당골네는 입을 만지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아~, 아~, 말이 나와. 말이 나온다. 하~,하~, 나으리 감사합니다. 소인 어찌 감히 거짓을 아뢰겠습니까?”


수염이 긴 사내가 꿇어 앉아있는 당골네를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때 이방이 당나귀를 달려 일행에 합류하였다. 이방은 나졸하나를 시켜 사또를 데려오게 하고 곧바로 수염이 긴 사내 옆으로 갔다. 당골네는 여전히 입을 만지며 말을 했다.


“도깨비가 나타났습니다.”


수염이 긴 사내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당골네가 이서방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도깨비가 갑자기 들어와 음식을 먹고 자신의 입을 없애버렸고 자신이 정신없이 도망쳐 왔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다가 군교를 만나 요괴로 오해를 받아 죽임을 당할 뻔했던 부분까지의 이야기였다. 수염이 긴 사내는 이야기 중간 중간 도깨비의 생김새와 크기 등에 관하여 상세하게 물어보았다. 이야기가 거의 끝날 무렵 도착한 땀범벅인 사또가 말에서 떨어지듯이 내려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였으나 이미 이야기는 끝난 뒤였다. 하지만 당골네의 이야기를 믿는 나졸들이 없는 눈치였다. 모두들 도깨비 이야기만 들었지 직접 본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수염이 긴 사내가 군교에게 명을 내렸다.


“속히 이서방이라는 자의 집으로 가보게. 아마도 도깨비가 없을 것일세. 그 집에 있는 자들을 모두 잡아들이고 도깨비와 관련된 것을 모두 관가로 옮겨 놓게나. 난 가서 확인 해볼 것이 있네. 아주 흥미롭게 돌아가는군…….”


수염이 긴 사내는 군교를 이서방의 집으로 보냈다. 더 이상 사또가 따라붙는 것은 짐밖에 되질 않는다고 생각하고 사또와 이방을 함께 관가로 돌아가게 했다. 관가 사람들과 함께 당골네가 떠나자 긴 수염의 사내는 윗옷에 있는 주머니에서 작은 피리를 꺼냈다. 그리고 피리를 불었다.


“삐~~~~~~~~~~~~~~~~~~~~~~~~~~~~~~~~~~~~”


피리소리는 마치 새소리와 비슷했다. 피리소리가 산의 골짜기를 타고 올라 산 너머까지 울려 퍼졌다. 산 너머에서 도깨비의 흔적을 찾고 있던 네 명의 사내가 피리 소리를 듣고 모두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당골 입구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수염이 긴 사내는 말을 몰아 도깨비의 집 쪽으로 향했다. 이방은 피리소리를 뒤로 하고 관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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