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목적
벽돌탑의 도깨비 - 14 <또 다른 목적>
“빨리 빨리 움직여!”
군교의 명령에 따라서 관가마당에 있는 나졸들이 이쪽저쪽으로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다.
“불을 저쪽으로 옮겨라. 불과 불의 간격이 맞지를 않잖아!”
군교는 신이 난 모양이다. 소리를 질러가며 이쪽저쪽으로 다니며 끊임없이 명령을 내렸다. 마당 안을 밝히기 위해 피워놓은 불이 바람에 계속해서 일렁인다. 군교는 바람 냄새를 맡아본다.
“음…….”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사방을 둘러본다.
“곧 비가 내릴 것 같다. 빨리 빨리 움직여라. 사방에서 중앙으로 그 흙을 뿌려라! 그리고 그 위에 다시 마루 밑바닥 흙을 퍼 와서 뿌려라!”
군교가 명령을 내리고 있는 사이 송나졸과 두 명의 나졸이 밧줄을 가지고 왔다.
“송나졸! 거꾸로 꼬은 새끼줄 맞지?
군교의 물음에
“예! 왼새끼입니다요.”
송나졸은 들고 온 새끼줄을 보여준다. 새끼줄의 굵기가 어른의 팔뚝만 하고 길이도 무척이나 길었다.
보통 새끼줄은 오른쪽으로 꼬아서 사용하는데 이런 것을 오른새끼라고하고 왼쪽으로 꼬아서 쓰는 것을 왼새끼라고 한다. 왼새끼는 금줄을 치거나 귀신을 쫓는 데에 사용하는 새끼줄이다.
군교와 나졸들이 새끼줄을 확인하고 있을 때 시원한 바람이 한차례 관아를 감싸듯 돌며 지나갔다. 그리고 곧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자 새끼를 확인하고 있던 군교는
“비가 온다. 불이 비에 꺼지지 않게 하여라. 그리고 비에 젖어서는 안 되는 물건을 모두 처마안쪽으로 옮겨라.”
나졸들의 움직임이 더욱 바빠진다. 군교가 나졸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을 때 이방이 옆으로 다가왔다.
“죄인들을 마당으로 데리고 오시게.”
이방이 군교의 귓가에 말을 하자 군교는 비를 쳐다보며
“비가 이렇게 오는데 괜찮겠습니까?”
“비가 대수요. 도깨비가 나타났는데, 빨리 끌고 오도록 시키시오.”
이방의 입가에 기분 나쁜 웃음이 다시 감돌았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밤이었다. 사내는 홀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마을을 조심스레 걸었다. 비를 막기 위해 쓴 삿갓 속에서 사방을 살피면서 조심해서 움직였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관아에 잡혀가 남아있는 사람이 없었지만 발걸음은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인근 절에는 스님들이 생활하기 때문에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어야했다. 다행히 비가 많이 내리니 스님들이 밖으로 다니지 않을 것 같았다.
“이 근처라고 들었는데. 어디지?”
혼잣말을 하면서 두리번거렸다.
“절 근처에 조그만 초가집이 한두갠가? 꼭 설명을 해도 이따위로 한다니까.”
사내는 투덜거리며 초가집 앞 사립문으로 들어갔다.
“여기구나! 생각보다 찾기는 쉽군. 완전 난장판이잖아.”
마당에는 비가 와서 물이 고여 있고 초가지붕에서는 빗물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마당 안에는 음식이 굴러다니고 마당에 깔려있는 멍석은 찢어져 있고 멍석위에 상도 부서져 있었다. 사내는 축담의 돌 사이와 마루밑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 위치가 지붕에서 비가 떨어지는 위치라 불편하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두워서 보이는 게 없군.”
사내는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궁이 속을 부지깽이로 이리저리 쑤셔대자 불씨가 보였다. 아궁이 한쪽에 소복이 벌건 불덩어리 숯이 있었다. 돌이의 어머니가 소중히 간직해 놓은 불씨이다.
“이 근처에 등잔이나 등이 있을 건데?”
사내는 부뚜막 위를 살폈다.
“여깄다.”
사내는 등 뒷쪽에 있는 소나무 가지를 아궁이에 넣었다. 불이 확하고 살아났다. 불이 붙은 작은 가지를 하나 들어 등잔에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부엌 안이 환해졌다. 사내는 왼손에 등잔을 들고 오른손으로 부뚜막에 있는 큰 사발을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등잔을 큰 사발로 감싸 빗방울도 막고 빛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도 막으려는 생각이였다. 빗방울에 등잔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면서 축담을 살피기 시작했다.
“분명히 축담 어디라고 했는데.”
축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한번 살펴보았지만 찾지를 못했다.
“축담위에 있는 돌인가? 혹시 고놈들한테 속은 거 아냐?”
댓돌을 밟고 축담위로 올라가서 마루 아래도 보고 주춧돌도 살폈다. 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다시 마당으로 내려오려고 축담 끝에 돌을 밟는 순간 몸의 균형을 잃었다.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잘못하면 마당으로 떨어질 뻔 했다. 돌을 발로 건드려보니 다른 돌들과 달리 움직였다. 아래에 뭔가 있는 것이다. 돌을 발로 밀어내자 축담에서 스르륵 빠지면서
“쿵~”
하고 땅으로 떨어졌다.
‘혹시?’
사내는 몸을 구부려 등잔불을 옮겨 돌이 빠져나간 곳을 비쳐보았다. 순간 등잔불 앞에서 뻔쩍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곳에 금덩어리가 뻔쩍이고 있었다.
“키키키, 여기 있었군. 키키키”
사내는 등잔을 마루 위에 올려놓고 몸을 숙여 금덩어리를 마루위에 옮기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삿갓을 타고 등을 적시고 있었지만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금덩어리에 취해 실실 웃으며 몸을 바삐 움직였다.
사내가 마지막 금덩어리를 쥐어들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자신의 앞에 있는 어떤 존재를 느꼈다. 그리고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렸다.
“넌 누구냐?”
그것은 사내의 목소리가 아니다. 몸을 일으키는 사내에게 빗속의 존재가 물었다. 사내는 존재를 향해 몸을 돌렸다가 뒷걸음을 치며 손으로 그만 등잔을 건드렸다. 등잔은 손에 닿이며 굴러 빗방울이 떨어지는 마당 쪽으로 쏟아지면 떨어져 불이 꺼져버렸다. 등잔이 굴러간 흔적따라 쏟아진 기름에 불이 붙어 힘없이 마루에서 바닥쪽으로 타고 있었다. 그리고 상대가 눈치 못 채게 왼손의 금덩어리를 도포 소매 안으로 감추었다. 금덩어리 무게로 인해 도포 자락이 축 처졌다. 사내의 눈에는 폭우 속 도깨비의 모습이 보였다. 사내는 뒤로 물러서며 마루에 주저앉아버렸다.
‘도깨비다. 어떻게 하지?’
도깨비의 불타오르는 눈이 사내를 쳐다보고 있었다. 도깨비는 처마 밑으로 들어와 사내를 관찰했다.
“너 누구냐고?”
사내는 가슴이 쿵쾅거려 입이 떨렸다. 사내는 몸을 뒤로 눕혀 최대한 마루에 꺼내놓은 금덩어리들이 도깨비의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 앙간힘을 쓰고 있었다. 비에 젖은 옷이 다행히 금덩어리를 덮고 있어서 도깨비는 금덩어리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사내의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이건 절대 들켜서는 안돼. 제발~~’
“저, 저는, 이웃에 사는 사람입니다요.”
사내는 입이 떨려 더듬거리며 대답을 했다. 도깨비는 대답을 들으면서 몸을 세웠다. 사내도 살짝 몸을 세웠다. 그리고 사내는 손을 뒤로 돌려 금덩어리들을 도깨비 몰래 만져 정리했다. 도깨비는 주위를 두리면 거리며 말했다.
“음~, 이집에 사는 사람들 어디 갔어?”
라며 도깨비는 팔짱을 끼며 다시 물었다.
‘아……, 뭐라고 대답을 해야 될까?’
사내의 머리는 무척이나 복잡했다. 하지만 도깨비를 기다리게 하는 것이 더욱 겁이 났다.
“관, 관아에 잡혀갔습니다요.”
“뭐라고?”
“저녁에 나졸들이 와서…….”
도깨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관아로 앞장서라!”
도깨비가 사립문 쪽으로 성큼 걸어가더니 사내를 기다렸다. 사내는 옷소매의 금덩어를 꺼내놓지도 못한채 도깨비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젖은 옷소매를 가슴깨에 품은 채 사립문쪽으로 걸어갔다. 날은 어둡고 비는 내리고 있어서 도깨비의 눈에 사내가 품고 있는 금덩어리는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도깨비는 사내를 앞장 세워 관아로 향했다. 사립문을 지나가는 삿갓 쓴 사내를 향하여 도깨비가 기분 나쁜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런데, 너 아까 뭔가 찾고 있지 않았냐?”
풍산아재가 창살 사이로 밤하늘을 바라봤다. 보름달이 먹구름에 잡아먹히고 있었다. 창살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풍산아재는 곧 비가 쏟아질 것을 느꼈다.
“이서방! 돌이 엄마! 둘 다 괜찮소?”
풍산아재가 이서방과 돌이 엄마에게 물었다.
“풍산아재 이쪽으로 좀 가까이 오시오.”
돌이 엄마는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이 없고 이서방이 풍산아재를 자신들이 묶여있는 감옥 가까이까지 오도록 시키자 풍산아재가 앉은걸음으로 창살가까이 다가갔다.
“아무래도 나와 우리 돌이 어멈은 여기서 살아나가긴 힘들 것 같소.”
이서방이 풍산아재만 들리도록 조그만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더 가까이 오라고 고개로 신호를 하자 풍산아재가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 돌이를 돌봐주시오.”
이 말을 듣고 있던 돌이 어머니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여보 나 때문에 미안해요. 제가 말조심을 했어야하는데.”
이서방이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후 이서방이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린 어려울 것 같소. 장모님과 돌이를 아무쪼록 부탁합니다.”
풍산아재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떡일 뿐이었다.
“이방놈이 우리를 살려 놓을 것 같지가 않소.”
묶인 채 쓰러져 있던 돌이가 기어서 이서방 옆으로 다가갔다.
“아버지!”
돌이가 몸을 돌려 옆으로 눕더니 이서방을 쳐다보며 말했다.
“돌이야! 어떤 일이 있더라도 넌 꼭 살아나야한다. 풍산아재가 할머니랑 널 돌봐줄 거야. 부엌에 나무 쌓아둔 것을 파보면 거기 항아리가 나올 꺼다. 거기에 돈이 있다. 필요할 때 그 돈을 써라. 그리고 힘든 일이 있으면 큰아버지를 찾아가.”
돌이의 볼을 타고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감옥 안은 소리 없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하늘에서도 비가 한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축축한 공기가 감옥바닥에 깔려 스며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