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별곡 9
뜻밖의 연락이 왔다.
두 개면 좋을까?
생일에 남편이 지갑을 선물했다. 뱀피로 된 꽤 비싼 장지갑이었다. 이런저런 걸 많이 넣어 다니는 내게 딱 맞는 것이라서 좋았다. 휴대폰도 들어갔다. 하지만 지갑은 한 달 도 안되어 감쪽 같이 사라졌다. 한 달 사이 다른 반에서도 지갑이 분실되는 일이 일어났다. 선생님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고 단속을 했다. 어떤 선생님 지갑은 사물함 뒤에서 찾았는데 다행히 현금만 없어졌다.
일단 지갑이 없어지면 돈보다도 더 귀찮은 일들 - 일단 카드 분실 신고, 면허증과 주민등록증, 공무원증등을 각가 다른 기관에 가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 - 애고!!! 화를 내면서도 누굴 탓하겠느냐고 간수를 잘못한 나 자신을 탓하면서 시간과 감정을 소모해야 했다.
새로 발급받은 각종 증들과 카드를 쓰던 지갑에 넣으며 선물 한 남편에게 미안했다. 한 달도 안 된 새 지갑인데 돈을 가져가도 지갑은 돌려주지 하는 말을 하며 한동안 가슴 쓰린 시간을 보냈다.
몇 주가 지났나? 내 지갑을 찾았다는 남편의 전화가 왔다. 자세한 이야기 퇴근해서 해준다고 한다. 어디에서 어떻게 찾았는지 좋아서 가슴이 뛰었다.
남편이 오자 말자 지갑을 받았는데 '어머, 진짜 내 지갑이네?' 잠시 정말 찾은 줄 알았다.
하지만 ㅠㅠ아, 뭐야 !!
빨리 그 지갑은 잊어라. 같은 색이면 생각 날 것 같아서 다른 색으로 샀다고 - 속상해하는 나를 위해 같은 지갑을 하나 더 산거였다. 고맙고 감동적이기는 했지만 가슴이 더 막히는 기분이었다.
지갑을 보는 사람마다 '어, 지갑 찾았네 - '하는 바람에 한 동안 '아, 아니야, 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지갑에 카드들과 함께 들어가 있었다. 그러면서 학기도 바뀌고 학년도 바뀌고 헌 지갑은 아예 잊어버리고 살았다. 이제 새 지갑이 헌 지갑이 되었다.
그렇게 해를 넘기고 아무 생각 없던 날, 뜻밖의 연락이 왔다. 전산실에서 지갑이 하나 발견 되었는데 선생님 지갑 아닌지 확인해달라는 - 검은 비닐봉지 안에 있는 것은 민트색 내 지갑이 분명했다. 전산실 대청소를 하다가 서브 뒤쪽 전선들 사이 버려진 검은 닐 봉지를 발견했단다. 그렇게 애타게 찾았던 게 세상 멀쩡하게 다시 나타났다. 지갑 속 민증과 공무원증의 내 증명사진이 웃고 있었다.
기쁨과 놀라움도 잠시
미제 사건의 해결? 그럼 속이 시원하고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처음엔 당황과 기막힘에서 어이가 없다가 나중에는 슬퍼졌다.
서버실 담당 전산 선생님은 작년 다른 학교로 이동해서 갔다.
범인? 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이 너무 커서 차라리 발견되지 말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아니었다는 것, 아이들을 의심한 것이 미안했다.
다른 선생님들의 잃어버린 지갑들도 찾았다.
교실 컴퓨터의 프로그램 오류나 시스템 문제를 해결해 줄 때 선생님을 믿고 교실을 비웠는데 - 조금 특이한 면이 있어서 더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줬는데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는데 - 감정이 복잡해졌다. 결국 지갑은 찾았지만 사람을 잃었다. 마음이 아팠다.
때로는 밝혀지지 않는 것이, 다시 만나지 않는 것이, 모르는 게 약일 때가 있다.
똑같은 두 개의 지갑.
헤어진 쌍둥이 형제가 다시 만난 듯 지갑은 둘이라서 좋은 듯 하지만 똑 같은 지갑이 두 개라니 그것도 좀 난처하다.
두 개 있으면 좋지. 번갈아가면서 쓰고 -
글쎄 그게 -
다시 찾은 지갑은 어쩐지 마음이 안가서 넣어두고 쓰지 않게 된다.
내 마음이 더 딴딴해지면 쓰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