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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애 Nov 08. 2024

언덕에서 떨어진 듯

사물 별곡 8

요즘은 대부분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산다. 손목 시계는 멋으로 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시계를 손목에 차고 다니는 것이 자랑이었다. 시계를 갖지 못하면 너무 갖고 싶었던 시절이다. 요즘 핸드폰이 없는 아이들이 너무 갖고 싶은 것 것처럼.     


지금은 도로도 잘 닦여있고 집집마다 차가 있어서 세상이 너무 가까워져서 하나도 문제가 될 게 없는 거리지만 그때는 중학교에 가면 읍내에 방을 얻어 자취를 해야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가거나 집에서 일을 해야하는 아이들도 있었기 때문에 중학교로 간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이고 설렘과 두려움이었지만 엄마를 떠나 낮선 집에서 혼자 밥을 해 먹고 잠을 자고 학교에 간다는 것이 더 걱정이 되면서 기대되는 일이었다.    

  

어느 날 내 자취방에 언니가 왔는데 그냥 온 게 아니라 월급으로 내 손목시계를,  그것도 보도 듣도 못한 우리 학교의 그 누구도 하고 있지 않은 전자시계를 사왔다. 태엽을 감아 밥을 주는 시계를 차던 시절 이었다. 착 감기는 뱀 같은 은색 시계줄에 크고 검은 동그란 시계에 붉은 글씨로 된 숫자로 시간이 나왔다. 그냥 있을 땐 숫자와 침이 보여야 하는데 이건 아무것도 없는 까만 것이라 더 신기했다. 옆에 튀어나온 조그만 버턴을 누르면 시간과 날짜도 나오고 초를 잴 수도 있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자 아이들은 이 새로운 신문물 내 전자 시계를 구경하겠다고 난리였다.     

 

하지만 곧 내 손목에서 나보다 빛나던 그 시계를 나는 잃어버린다. 그것도 자취방에서. 자고 일어났는데 없어지고 만 것이다. 도둑을 맞은 거다. 잘 때도 시계를 차고 자지 않은 내가 잘못한 거 같았다.


내가 자취하던 집은 학교 근처에 있었다. 골목 안으로 난 파란 대문을 들어서면 주인집을 시작으로 마당 가운데 꽃과 향나무 사철나무 같은 게 심어진 네모난 정원과 수도를 두고 빙 둘러 가며 방들이 있었다. 브로크로 벽을 치고 대충 시멘트 발라 스라브 지붕을 얹고 연탄아궁이 하나씩 있는 부엌과 방하나가 벽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는 집이라 옆방과 소통을 벽으로도 할 수 있었다. 좀 넓은 방은 가난한 신혼부부들이 살고 작은 방들은  자취생들에게 세를 놓았다. 그중 내 방은 유일하게 뒷 방문이 있었다. 창호지가 발린 문살의 약간은 삐걱대는 작은 문인데 주인아줌마도 엄마도 문고리를 꼭 걸어 둬야 하는 것을 강조했다. 그 문으로는 바로 뒤안의 화장실을 갈 수 있었다. 


내 시계가 없어졌다는 것을 말하자 무서운 주인아주머니는  바로 불호령을 내렸다.

부면장까지 지냈다는 아저씨는 풍으로 반쪽을 움직이기 어려운 장애를 가지고 계셔서 거의 아무것도 못하시고 아주머니가 이 집의 모든 것을 관장하고 계셨다. 여덟 개나 되는 집(방)들의 살림살이며 형편을 알고 계셨고 무섭고 엄하게 호통도 치고 딱 끊고 맺으면서 자신의 가정과 집 전체의 평화와 안녕을 유지했다. 

수돗가에서 쌀을 씻거나 양동이에 물을 받아 부엌으로 들고 갈 때도 아줌마 눈치가 보일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공부한다고 일찍 타지로 나와 사는 어린 학생들에게 걱정하는 부모 대신 돌보고 거두는 것이었는데 그때는 그냥 아줌마가 있으면 무서워서 같은 방 사는 친구와 서로 니가 나가서 물 떠 오라고 니미락 내미락 했다. 


온 집이 다 발칵 뒤집어졌다.

아줌마는 나에게는 귀중한 시계를 잃어버렸으니 언덕에서 뚝 떨어진 듯이 얼마나 정신이 없겠느냐 이일을 우짜냐며 위로를 해주시고는  자취하는 옆방 그 옆방 아이들부터 취조를 당했다. 부부가 사는 -어른들에게는 좀 덜 했던 것 같다. 시계가 없어졌다고 누구 짓이냐고 모두에게 호통을 치고 범인을 찾겠다는 의심에 가득 찬 예리한 눈길을 모두에게 보냈다. 특히 옆방 총각에게 더 했는데 그는 그림자처럼 조용하고 묘한 분위기를 가졌는데 의심을 받을 만하다고 다들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당연히 절망에 빠져 있었고 집 사람들은 서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서 불안에 떨었다.  못 찾으면 어쩌나 ? 정신이 나간채로 나는 덜덜 떨고 있었다.  


그렇게 한다고 없어진 시계는 나오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내가 가져갔어요 할리가 없다. 서로 나는 아니라는 알리바이를 대면서 주인아주머니의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하지만 주인아주머니는 바로 태세를  전환하는 묘수를 냈다.  엄청 무섭게 경찰을 부를 듯하고는 - 누구나 물건이 탐날 있어서 잠깐 욕심을 있다. 그러니 누구든 가져간 사람은 내일 까지 어디든 좋으니 사람들 눈에 띄는 곳에 시계를 갖다 놓으면 누가 그랬는지 묻지 않겠다것이었다. 


욕심이 나서 훔쳤지만 범인은 들킬까 엄청 쫄아 있을 거고 잘 때 방에 들어와서 가져간 거면 집 안에 범인이 있으며 시간을 주면 그걸 다른데 갖다 버리거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주머니는 이미 추리했던 거다. 일일이 방을 뒤지고 찾는 것보다는 훔쳐간 사람도 잃은 사람도 어차피 같이 한 집에 살아야 하는데 도둑이라는 낙인을 찍히면 안 되니까 서로 민망하지 않도록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가난한 자취생들을 겪다 보니 경험에서 나오는 현명한 지혜를 가지고 계셨던 거다.  


나는 이때 배운 주인아주머니의 이 수법을 학교에서 물건이나 돈을 훔쳐간 아이들에게 써먹게 된다. 

지금은 돈을 훔치거나 물건을 가져가는 아이들이 거의 없지만 내가 처음 교직에 나갔을 때는 그런 일이 정말 생각보다 자주 일어났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떠났다고 생각했던 그 시계를 찾게 되어 한 참은 더 차고 다녔다. 이런 재미있는 스토리를 까지 얹어서 말이다. 

혹시 그 시계 사진이 어디 있을까? 옛날 앨범을 뒤졌다.  중학교 때 사진에도 시계를 차고 있는것이 있지만 도저히 알아보기 힘든 정도이고 이건 고등하교 1학년 때 사진이다. 

지금보니 그렇게 소중했던 시계는 그저 그런데, 교복을 입고 다정하게 팔짱을 낀 친구와 내 손에 더 오래 눈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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