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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애 Nov 01. 2024

나비는 날아가서 나비인거지

사물 별곡 7

1986년도 여름에 일본을 갔는데 사촌 오빠에게서 하네모리 양산을 선물로 받았다. 반짝이는 진분홍색 천에 하얀 나비 문양이 있는 양산은 고급스럽고 예뻤다.  

그 때 막 학생을 벗어난 나에게는 엄청 비싼 물건이기도 했지만 양산은 어딜 가도 눈에 띄어서 나를 돋보이게 해주었다. 면으로 된 밝은 색 천에 꽃무늬 프린트가 들어간  수수한 양산을 많이 쓸 때라 내 양산을 쓰기만 해도 거의 독보적인 화려함을 뽐냈다. 


하지만 - 

나는 이 양산을 잃어버린다. 

양산이 나에겐 너무 과했던 것일 수도 있다. 

시간이 너무오래 지나서 지금 그 양산을 잃어버린 사건을 남편과 나는 서로 다르게 하고 있다. 

나의 기억은 대구에서 하양으로 오는 35번 버스에서 나는 그 양산을 두고 내리게 된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양산을 되찾을 수 없었다.  


남편의 기억은 우리가 결혼하던 날 살짝 맞아도 좋을 만큼의 비가 왔는데 신부 화장을 하기 위해 갔던 미장원에 그 양산을 두고 왔고 정신 없을 수 밖에 없는 결혼식 후 두고 온걸 알고 연락을 했지만 미장원에 양산은 없었다는 것이다.  

누구의 기억이 더 맞는지 누구의 기억이 조작된 기억인지 알 수 없다.

서로 당신의 기억이 맞을 거야 라고 말한다. 


비싸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어떤 양산도 그것을 대신 할 수 없었고

엄청 아껴서 두 해 여름을 사용한 거라 해도 여전히 새양산 같았다. 

          

그 후 한 동안 나는 양산만 보게 되었다. 

붉은 색깔의 양산이 어디 보이기라고 하면 눈을 반짝이며 그 색을 쫓았다. 

버스에서 어떤 아줌마가 가진 접은 양산이 내 것 같아서 따라 내릴 뻔도 했다. 

누가 꽃분홍색 양산만 들고 있어도 멈칫 보게 되었다. 

이런 내 모습 때문인지 나보다 남편이 더 속상해 하고 애를 태웠다.    

 

그렇게 눈에 밟히던 양산도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져 갔지만 

결혼하고 아이들 기르면서도 여름이 와 양산이 필요한 시기가 되면 꼭 하네모리 나비 양산 이야기가 한 번씩은 나왔다. 

당신 그 잃어버린 양산 – 우리의 생각 속에서 양산은 점점 더 화려하고 예뻐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20년쯤 지나고 보니 

별로 기억에서 소환되는 일조차 없이 다른 양산을 잘 쓰고 다니게 되었다.     

  


그해 여름 휴가를 청송으로 갔다.

송소 고택에서 하룻 밤을 자고 다음날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으로 유명세를 탄 주산지를 갔다.  

내가 청송에 근무를 했지만 그때만 해도 청송하면 주왕산이나 달기 약수터였지 주산지는 알려지지 않는 곳이라 가볼 생각도 안했다. 

아침 시간이었지만 주산지 입구부터 올라가는 사람뿐 아니라 새벽의 주산지의 물안개가 아름다우니까 이미 보고 내려오는 사람도 많았다.      


한 여름이니 아침이라도 해가 뜨거웠다.  땀이 흐르는 걸 아이들 앞세워 다른 관광객들 사이로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 오던 남편이 뛰어와 다급하게 말했다. 


"저기, 저기 당신 양산!! 하네모리 양산 !! "

응? 가리키는 쪽을 보니 조금 멀리 사람들 머리 위로 찐분홍, 흰 나비 문양 양산이 한들한들 보였다. 

한 번 더 눈을 크게 뜨고 유심히 보았다. 

맞을지도 –  나는 심장이 떨렸다. 

남편은  잃어버린 가족이라도 찾은 듯 너무 흥분해서 가서 물어보자고 하는데 나도 궁금하긴 했지만 너무 까마득한 예전 일이라 그걸 물어 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마음이 컸다. 남편에게 지금와서 그걸 물어보냐며 쿨하게 말하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걸어갔다.      


진짜 내 양산일까? 

차라리 못 봤으면 – 확인을 해보고 싶었지만 돌아서서 한 번 더 보고 싶었지만  지금 와서 뭐하게 – 

양산이 내 마음에서 지워진지 오래라서 더 당황스럽고 생각이 복잡해졌다. 가슴이 진정되지가 않아서 그냥 앞만 보고 걸어가버렸다.      

나보다 그 양산을 더 아까워했던 남편은 꼭 확인을 해서 의문을 풀어야 했던지 그 부끄러움 많은 사람이 결국 다가가 물어보았다고 한다. 


죄송한데 혹시 이 양산 본인 것이 맞느냐고 - 눈빛이 흔들리며 약간 놀라면서 자기 양산이 맞다고 했다고.

가까이서 본 그 양산의 낡은 정도나 천의 재질, 색깔 나비문양 –을 봤을 때  잃어버린 내 양산 이라는 것을 남편은 확신했다고 한다. 

그렇다 한들 어떻게 할 것인가.  그사람이 어떻게 양산의 주인이 되었는지 없고 필요도 없다. 

아무리 내 것이 아니었어도 한20년을 썼으면 그건 쓴 사람 것이다. 사람도 그 정도 같이 살면 사실혼 부부다.      

누구라도 예쁘게 썼으면 된 거다.  내가 그 양산을 가질 팔자가 아니라 서로 인연이 못 닿은 거지. 

이렇게 먼발치에서 라도 서로 다시 만나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

나비는 날아가서 나비인 거지.

이 글을 쓰면서 오랜 기억을 다시 꺼낸 결과가 되어 아직도 선명한 하네모리 나비 양산 이야기가 한참 오갔다.

지금은 더 예쁘고 기능이 좋은 양산이 쌔고 쌨다.  나는 여전히 양산을 쓰고 다니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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