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별곡 6
2017년 4월 16일
벚꽂이 진다.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목련 꽃 봉오리가 벙글어지는 날이다.
소파를 내려 놓았다.
쓰레기 장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에.
방금 전까지 소파였는데 거기 내려 놓자 바로 쓰레기가 되어버렸다.
용납이 안된다.
조금 전까지도 내가 앉고 눕고 다리를 걸쳐 끌어안고 있던 건데.
나는 소파에 누웠다.
소파 쿠션에서 고양이 오줌 냄새가 그대로 난다.
마지막 벚꽃잎이 하나씩 얼굴로, 소파로 떨어진다.
나무들이 연두색 잎으로 몸치장을 해도 아직은 헐렁한 가지사이로 아파트와 하늘이 아득하다.
약간 어지럽다.
소파는 다리를 없애 버려서 땅바닥에 앉아 있지만 여전히 클래식 하면서도 편하고 내 몸에 딱 맞다.
누가보면 저 여자 미쳤다고 하겠지만
너는 나에게 쓰레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싶었다.
몸빼 바지에 스웨터 하나 걸친 거지같은 웬 여자가 쓰레기장에 버린 소파에 누워 있는걸 보면 신고가 들어갈 수도 -
남의 눈 같은건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제 기억으로만 떠 올려야 할 소파가 피부에 닿는 감촉을, 푹신하게 감싸 안아 마지막으로 엄마품 속 같아지는 기분을, 소파와의 교감을 깊이 아주 깊이 저장했다. 오래 잊지 않도록.
소파가 처음 집에 왔을 때 우아 하면서도 세련된 도시 여인 같았다. 화려함이 절제된 바로크식 곡선의 우아함과 심플함을 같이 가지고 있어서 누가봐도 클래식한데도 심플한 예쁜 소파였다. 부드러운 갈색 가죽과 살짝 밖으로 휘어진 4개의 짧지도 길지도 않은 나무 다리가 소파의 전체적인 느낌과 곡선미를 완성시켰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에는 어울리지 않는 소파였다. 아이들은 소파위에 올라가고 뛰고 밀고 당기면서 뾰족구두를 신은듯한 다리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나사로 박아 논 것이 이리 저리 돌아가서 어떨 땐 하나는 안쪽으로 보고 하나는 밖으로 보고 제 각각 다른 방향으로 보고 있어서 웃기기는 하지만 그 때 마다 그것을 제 방향으로 돌려 놓는 것도 일이었다. 그 얇은 다리 4개가 소파에 앉은 사람들 무게를 다 감당하는 것도 불안했다.
이사를 하면서 다리 뺀걸 다시 끼우지 않고 그냥 다리 없이 놓고 쓰기로 했다.
다리 없이 철퍼덕 바닥에 앉자 소파로서는 모양이 많이 빠지는 일이었지만, 소파가 우리 보다 더 안심 하고 좋아하는것 같았다.
그동안 스타일 유지한다고 뾰족구두 신고 힘들었을거다.
낮아진 소파에서는 무릎을 세우기 보다는 다리를 뻗고 앉게 된다.
편한듯도 하고 불편한듯 하고 하여간 쓰는 데는 나쁘지는 않았다.
많이 닿은 자리는 가죽이 낡고 낡고 상해서 커튼 천을 잘라 내 손으로 바느질 해서 씌웠다.
푸른 색이 갈색과 잘 어울려서 나쁘지 않았다.
소파에 딸린 같은 색 가죽의 쿠션 3개가 있었는데 소파 가죽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가족으로 폭신해서 베개로도 쓰고 등받이로도 쓰고 끌어 안기도 했는데 그 아랫부분은 공기가 빠지도록 바늘자국 같은 구멍이 뚫려있었다.
그 작은 구멍으로 가끔 속에 든 깃털이 하나씩 나와서 아이들이 간지럽히며 좋아했다. 그 쿠션들도 가죽이 낡아서 오리털 충전재만 빼서 새 쿠션을 하나 만들고 껍질은 버렸다. (그러고 보니 그 쿠션이 남아 있네. 껍질만 바뀐채로)
소파를 잠정적으로 언젠가는 버려야 한다는 가정하에 천연소재 마로 된 천소파를 샀다.
디자인도 느낌도 집과 잘 어울렸지만 낡은 소파와는 비교도 안되게 내구성과 편안함이 떨어졌다.
낡은 소파는 새 소파를 질투하기 보다는 재미있어 하는것 같았다.
솔직히 쨉이 안됐다.
소파 두 개를 거실에 기역자로 놓고 쓰다가 앞뒤로 놓아도 보고 이리 저리 옮기면서 나름의 이유를 붙여서 헌 소파를 버리는것을 질질 끌며 미루고 있었다.
무슨 역 대합실 같기도 하고 극장식 이니 하면서 장난을 하고 웃기고 그 나름의 재미가 또 있기는 했다.
어느집 없이 소파는 거실에서 가족들의 안식처가 된다. 아이들은 서로 부비고 거꾸로 미끄러지며 소파를 못살게 굴었고 누군가 한사람은 꼭 소파에 누워서 티비보다가 잠이 들었고, 티비 리모콘 없어져서 온데로 다 찾다 소파 사이에서 나오고 식구들 모두의 엉덩이를 책임지고 가끔은 모여 앉아 가족 사진도 찍고. 우리 모두의 휴식과 웃음과 행복을 책임져 주었다. 엄마품처럼 누구라도 가서 안겼다.
차일 피일 미루던 폐기물 수거 전문 업체에 전화를 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4.17 월
오후에 비가 오고 쌀쌀하다.
퇴근길에 모든 쓰레기들이 다 치워지고 홀로 남겨진 소파 발견하고 너무 마음이 아파 차를 세우고 한참을 소파 등을 보았다.
지하 주차장에서 바로 올가지 못하고 1층에서 내려 소파를 보고 왔다.
벚꽃잎이 가득 떨어진 소파는 젖어 있었지만 당당하고 멋있다.
모습이 흐트러지지 않고 아름다워서 좋았다.
잘가 소파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