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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애 Aug 06. 2024

견생 묘생

내가 박살 낸 것들 11


    딸아이가 강아지와 고양이 인형을 선물로 줬다.

    “어머 뭐야? 귀여워!! 쭉쭉이 하고 있네”

     “엄마, 이건 인형이 아니고 볼펜이야.”

 뒷다리 쪽 배를 당기면 분리되면서 머리 쪽이 볼펜이고 꼬리 쪽이 뚜껑이 되었다. 재미있네. 아빠는 파란 강아지 나는 초록 고양이를 갖기로 했다. 학교 가서 아이들 보여줘야지. 아이들이 신기해서 자기도 한번 쓰게 해달라고 조르겠지.

   

    쓰고 닫고, 쓰고 끼우고 고양이와 강아지 몸을 넣었다 뺐다 재미가 붙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내가 그만 강아지를  밟아서 엉치 쪽이 깨지고 말았다. 부상당한 강아지 골반은 응급센터로 가서 순간접착제의 시술을 받고 10분의 재활 시간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헐거워져서 뚜껑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강아지를 그렇게 불구로 만들고 장식용으로 전락시킨 게 미안해서 고양이를 같이 곁에 뒀다. 둘은 그렇게 나 때문에 청춘을 옴짝달싹 없이 누구 몸이 더 긴가 내기하듯 허리를 길게 늘이며 마주 보고 지냈다.


    시간이 지나서는 목에 달렸던 방울 끈이 삭고 방울도 녹이 슬어 저절로 떨어지고 눈도 점점 흐려지고 긴 허리의 아픔을 지탱하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둘이라서 외롭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가끔은 꽁지를 뽑아 뚜껑을 열고 자신들이 재미있는 만화도, 예쁜 그림도 그리고 아름다운 시와 따뜻한 편지도 쓸 수 있는 잉크를 품고 있는 귀엽고 멋진 강아지와 고양이라는 것을 기억시켜 준다.


    더 늦기 전에, 잉크가 다 말라버리기 전에 학교로 데려가  아이들에게 자랑해 줘야겠다. 아이들은 조그만 손으로 너의 허리를 잡고 글씨를 쓰면서 닫았다 열었다 행복해할 거야, 너를 칭찬할 거야. 달라고도 할 거야.  맘껏 뽐내게 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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