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정애 Aug 12. 2024

입춘대길, 그냥다경

내가 박살 낸 것들 22

 유리 공방에 가면 한두 개 예쁜 유리로 만든 소품을 사게 된다. 초록색 손잡이가 있는 종과 보라섹 리본에 매단 금박 무늬가 아름다운 종 2개와 장식유리 볼을 샀다. 종 2개를 거실 책장에 매달고, 얹어 나란히 뒀는데 종소리도 예쁘지만 가만히 보기만 해도 종은 마음을 설레게 하고 어디론가 아름다운 동화 속으로 떠나는 기분이 들게 해 주었다.

  

 어느 날 남편이 살짝의 유머가 있는 '입춘대길'과 '건양다경'을  써와서 그걸 매달려고 초록 종을 옮기다가 손에서 종이 쑥 빠져 떨어지며 박살이 났다. 잠시 숨이 멈추어졌지만 '왜 이걸 써 와 가지고는' 남편 탓을 하며 깨진 유리 조각을 치운다. 그나마 보라색 종이 있어 다행이야. 하도 깨다 보니 능수가 나서 평정심도 얼른 찾는다.


'안녕, 너와 나의 인연은 여기까지'  

차가운 말을 던지고 스스로 놀란다.    


'나에게 올 때부터 너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을지도 몰라. 초록 드레스의 공주님 같았던 아름다웠던 종 안녕. 생이 짧았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기를. 너와 나의 인연은 여기까지- 짧아서 더 소중하고 강렬 한 나의 초록종-'

이래야만 할까?


어느 쪽이 더 애틋하다고는 할 수 없다.


초록종을 죽이고 입춘대길, 그냥다경을 매단다.  

더 많이 입춘대길, 건양다경 하기를 -


매거진의 이전글 버리지 않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