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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애 Aug 11. 2024

버리지 않는 것

내가 박살 낸 것들  21

주부라면 그릇을 깨고, 깜짝 놀라고 정신 차리는 1,2초를 지나면, 위험하다, 다친다, 비켜라 소리치며 깨진 조각을 치우고 버리는 순서를 자동 재생 한다.  

     

금이 가거나 이가 빠진  그릇,  깨진 그릇인데도 버리지 않고 쓰거나 간직하는 것들이 있다. 그릇에는 식구들의 시간이 담겨 있다. 이 그릇들은 나에게 그런 그릇들이다.


투박한 차사발인데 입이 넓어 차를 마시는 용도보다는 과일 담는 그릇으로 많이 쓴다. 과일이 멋스러워진다. 뭘 담아도 그릇 덕을 본다. 채운 깨진 부분이 약간의 변색이 있지만 쓰는 데는 문제가 없다.


 연잎 찻잔은 물 잔으로 쓰다 보니 사용이 많아 입이 여러 곳 깨졌다. 날카로운 부분을 갈아서 꽃잎 모양인척 만들고 금이 간건 그릇 안쪽에 그려진 잎맥과 비슷하다 하고  쓴다. 익숙해서 인지 작은 물 잔을 선호하는 우리는 이것을 대신할 만한 잔을 아직 찾지 못했다..


 내가 만든 도자기 그릇 중에서 마음에 들어 아끼던 건데 집으로 가져오면서 깨져서 써보지도 못하고 그릇장 신세가 되었다. 수리해서 형태를 유지하고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그릇이다.


 안쪽의 붉은색도 예쁘지만 크기가 밥이나 국그릇 어느 쪽으로 써도 좋다. 옴팡하게 생겨서 음식을 담으면 안정감이 있는데  깨진 조각을 붙였지만 이가 빠진 뒤  잘 안 쓰게 된다.


 진사 유약 빛깔이 너무 아름다워 아끼던 국수 그릇 네개 . 네 식구에 딱 맞았는데 이 빠진 하나. 이 정도는 너무 작아 티도 안나 하고 쓰지만 음식 담아낼 때마다 내 눈이 거기 딱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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