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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애 Aug 11. 2024

보노보노가 된 토끼

내가 박살 낸 것들 20


 하얀 토끼가 귀엽게 두 손을 앞으로 하고 서있다. 몸통은 손잡이이고 귀와 머리 위쪽이 둥그런 주걱이다. 도톨도톨해서 밥알이 안 붙는 주걱이라는데 밥알이 조금 덜 붙을 뿐 붙기는 붙는다. 무엇보다 밥 솥 옆에 세워 둘 수 있어 편리하고 깔끔하다.  쓰고 있던 플라스틱 주걱과 대나무 주걱은 서랍으로 들어가 친구들과 껴 누웠고 이 토끼 주걱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모양도 예쁘고 기능도 훌륭해서 자기 존재감이 확실했다.  

   

퇴근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구수한 밥 냄새가 났다. 딸이 밥을 해놨다. 어쩐 일? 근데 왜 나무 주걱이 나와 있지? 잠깐 의문이 들었으나 나무주걱을 써야 할 일이 있었나 보다 하고 말았다. 옷 갈아입고 씻고, 저녁도 먹고 쉬는데 남편이 퇴근하며 ' 어? 토끼 왜 이래? 주걱은 어디 갔어?' 하는 말에 '그러게 주걱이 안 보이네.  대나무 주걱을 꺼내 썼더라고' 답했다.

        

다음날 아침, 내 눈에 들어온 이상한 새 인형  - 남편의 토끼 왜 이래?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바로 깨달았다. 토끼가 유리컵 속에 갇혀 있었다. 주걱 없이. 성질 급한 나는 어제 들어오면서 현관 입구 장 위에 올려 어 놓은 토끼를 못 봤던 것이다.


 ' 밥 푸려는데 뚝 그냥 부러지더라고 – 그래서 유리컵 속에 넣어줬어. 꼭 토끼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니지. 보노보노로 살면 안 돼? '   딸은 내가 속상한 줄 알고 말하는데 전혀, 동지가 생긴 든든함이랄까?


밥솥 옆 왕좌에서 내려와 유리컵 속으로 들어간 보노보노가 된 토끼 –하하하.

마이너스의 손도 유전이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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