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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r united Jan 10. 2019

철콘 근그리트 속 이끼 한 줌, 동전 한 닢

Cleverson Salvaro 인터뷰( 2018 금천예술공장 국외작가)


철콘 근그리트 속 이끼 한 줌, 동전 한 닢


글 조주리




서울이 처음이라는 클레버슨과의 대화는 브라질의 공용어인 포르투갈어, 거의 비등하게 버석한 둘간의 영어, 그리고 간간히 한국말로 진행 되었다. 둘 사이에 초청된 통역사가 있었지만, 대개가 그렇듯 이국의 언어는 이쪽에서 궁금해 하는 지점과 저쪽에서 전달하려고 하는 바에 온전히 왕복운동하지 못한 채, 한낮의 미시(未時)를 지난다.


왜 한국에 오려고 마음을 먹었는지, 이곳에서 주로 그는 어떤 방식으로 일상을 소비하고 있는지, 작가로서 관심을 기울이는 미시적 소재들이 수렴하는 큰 줄기는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작가가 속해온 미술 생태계는 상대적으로 어떠한지 작고 큰 질문을 교차하여 던져본다. 그에게 돌아오는 대답의 대부분은 흐릿하다. 아직은 결론에 가 닿지 않은 진행형의 서술이다. 명료한 예술적 쟁점이나 지금 이곳에서의 삶의 당위를 묻는 비평가의 질문이 조금은 머쓱해진다. 오히려 궁금함의 총량으로 치면 이 낯선 곳의 시간을 통과해 가고 있는 작가 쪽의 추가 훨씬 무거울 지도 모르겠다.


질문 대신, 최근 십여년 간 그가 지나온 작업들의 궤적을 함께 살펴 보았다. 미리 전달된 꽤 두툼한 포트폴리오를 통해 적지않은 이미지들을 보고 왔지만, 간략한 제목과 캡션 정보가 전부다. 매끈하고 반짝이는, 다시 말해 손쉽게 유통되고 소비될 수 있는 시각적 상품은 아니다. 구축과 생산보다는 철거와 해체에 가까운 오브제, 한 구석 삭풍이 불어오는 듯한 서늘함과 폐허의 풍경들. 단정하게 정돈된 먼지 무덤과 균열된 벽체, 바스러질듯한 철골 더미같은, 모순적 심상으로 툭툭 다가온다. 기실, 작가를 만나기 전부터 두 가지 언어적, 시각적 특질들을 이미 마음에 묻힌 채, 그의 스튜디오에 온 터이다.  


 그의 잔잔한 회색 유머. 지독하게 어둡거나 의표를 찌르는 블랙 유머는 아니었다. 길에서 주운 낡은 시계의 금속 마디들을 마치 경주하는 자동차 대열처럼 죽 늘어놓은 “Lost time”(2016)이 그렇고, 폴리우레탄 발포체로 무심하게 빚어놓은 “easyart”(2016)의 제목이 주는 인상이 그랬다. 미술관 외벽에 설치한 대형 텍스트 작업 “Greve(Strike) (2011)로부터 미술관 관람의 행위를 일상의 리듬을 잠시 멈추게 하는 일시적인 파업으로 정의하는 작가의 언어 사용법 또한 그의 일상적 공간과 사물 읽기를 유추하게 하는 단서가 된다. 따라서 드러난 작업의 이미지와 작품의 제목을 연결하여 형태, 질료, 배열의 낙차와 모순을 짚어보는 일은 과거 작업의 특질을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을 제공한다.


Cleverson Salvaro, <tempo perdido>, 2016,  Rio de Janeiro
Cleverson Salvaro, <GREVE>, 2011impressão digital , 2010-2011Museu de Arte


한편, 파운드 오브제들로 구성된 클레버슨의 작업들. 거리에서 우연히 취득하거나, 사실은 매우 집요하게 수집 발굴해낸 일상의 사물들의 물성이나 배열들로부터 가벼운 이탈, 공격의 강도와 방향이 명확하지 않은 냉소적 기운. 설치 작업의 재료로 자주 사용되는 콘크리트나 스틸, 목재와 같은 단단하고 질감과 그것들의 창백한 회색 표면은 대체적으로 어딘가 낡고 삭아, 역설적으로 연약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Cleverson Salvaro, <artefacil>, 2016poliuretano expandido
Cleverson Salvaro, <colateral>, Rio de Janeiro, 2017

주변으로부터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일상의 편린들을 ‘조각모음’하여 비-기념비적인 질서로, 접합의 지점이 훤히 드러나는 생경한 풍경으로, 마음을 폭 찌르는 이미지 장치를 걸어두는  설치 미술가의 시각적 연금술이란 더러 목격해 왔던 일이다. 일종의 고현학자(考現學者)처럼 느껴지는 클레버슨의 작업 태도가 여기에 맞닿아 있다. 그러나 보는 이의 미적 체계와 보편 취향에 충격을 가하는 물질적 연금술이나 소재와 구조를 정밀하게 다루는 장인적 풍모와는 상이한 것이다. 오히려, 소박하게 반복되는 일상성은 그의 작업을 나아가게 하는 착실한 동력처럼 보인다. 가령, 2013년 칠레의 레지던시에 머물며 진행했던 disvalue는 거리에서 주운 다양한 동전들을 이용해 다시 거리 바닥에 평면적으로 배치한 일시적 설치 작업이다. 새롭게 만든 것도, 버린 것도 없는 이러한 작업이 가지는 비물질성과 웅변이 소거된 윤리적 태도는 이를테면, 새로운 곳을 탐색하는 유목형 작가의 공통적 특징이기도 하다. 작가의 여행 서사는 늘 흥미를 자아내지만, 클레버슨이 찾는 것이 모두의 눈에 보이는 발광체는 아닐 지도 모르겠다. 크고 넓적하고 반짝이는 것들, 그 반대 어디 즈음일지도 모르겠다.


동시대의 흔한 물질계가 언젠가 미래 시점의 유적으로 이행하고, 대과거에 매립되었던 유물들이 현재의 생생한 오브제로 귀환하는 것처럼, ‘고현학자’로서의 동시대 미술가란 과거를 탐색하는 문화인류학자에 그치지 아니하며, 도래할 세계를 예측하는 미래학자도 아닌, 그보다 광대한 장소성과 비선형적인 시간감각을 지시하는, 애정어린 별칭일 수 있겠다. 금천에 머무르는 동안 하루하루 조금씩 풍경이 달라지고 있는 클레버슨의 설치 작업을 본 후, 입 속에 맴돌던 그 단어가 떠올랐다. 그가 정말로 고현학자 같은 작가였는지, 혹은 그러한 작가가 될 것인지는 좀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을테지만.


대화를 나누었던 클레버슨의 스튜디오 내부에는 창 밖으로 펼쳐진 도심의 건축물을 향해 수직적인, 그러나 전혀 위협적이거나 영웅적이지 않은 앗상블라주에 가까운 설치물이 들어서 있다. 동네 어귀에서 주워 온 낡은 거울, 이웃의 중국집에서 버린 플라스틱 그릇들, 볼품없는 폐자재들과 페트병으로 얼기설기 지어놓은 구축물의 모습이 영락없이, 언젠가 ‘철콘 근그리트’ * 에서 보았음직한 도시의 쇠락한 심상을 담고있다. 어떠한 연유에서인지 짓다 만 대형몰의 공사현장 한 구석, 미처 관리의 손길이 닿지 않은 도시의 빌딩과 미술관의 사각 공간 같은 허술한 미감을 재현하는 그의 작업들이 실은 정교한 작가적 플랜에 의해 연출된 것임을 이미 알고 있지만, 얼기설기 각목과 나무 합판으로 짠 구조와 그 사이로 비죽 나와 있는, 이름 모를 풀 몇 포기와 이끼 한 줌이 그날 나에게는 작가가 구성한 약간의 따스한 온도가 스며있는 철콘- 근그리트의 세계로 다가왔던 것이다.



*일본의 급성장하는 신도시를 배경으로 인간의 고독을 누아르적 감성으로 그려낸 애니메이션으로, 철근 콘크리트를 잘못 발음하는 데서 착안한 제목, 마쓰모토 다이요 원작 만화를 2007년 마이클 앨리어스가 애니메이션 필름으로 제작하였다.


Cleverson Salvaro, <mobio>, 2011musgo e concreto



A Handful of Moss and a Coin in Reincon Forcerete*


Written by Juri CHO




It was Cleverson’s first time in Seoul. We conversed in Portuguese, the national language of Brazil, broken English, peppered with the occasional Korean. Of course, there was a designated interpreter, however, the object of my inquiry and what my counterpart aimed to convey failed to meet in between, as is always the case with communicating with people who speak a different language. And so, the afternoon trudged on in discord.


Why did you first decide to come to Korea? How do you spend your time here? What is the big picture the smaller interests as an artist make up? What is the art scene at home like compared to that of Korea? I swung back and forth between the more significant and lighter questions, but most of the answers I received were vague, with his narrative mostly still in progress. I began to feel somewhat sheepish in my “critiquely” pursuit for clear-cut artistic themes, and his reasons for his being in Korea. But then again, the scale might tip toward the artist when it comes to the volume of curiosity. After all, it was he who is passing through an unfamiliar place.

Instead of asking more questions we decided to take a look at the trajectory of his work for the past decade. I already looked through his rather large portfolio, but it simply consisted of images, titles and captions. His work is not sleek and shiny. In other words, they aren’t readily consumable visual products. They were objets of demolition and deconstruction rather than of production and construction. They evoke paradoxical imagery of chill winds blowing in the ruins. Well organized dust mounds, cracked walls, a pile of steel frames that look minutes away from disintegrating. I arrived at his studio firmly decided on two linguistic and visual characteristics. First of all is his subtle gray humor. It wasn’t dark and piercingly witty black humor. His works Lost Time (2016), segments of metal straps taken from old watches collected from the streets, and Easyart (2016) a slab of roughly sculpted polyurethane foam reflect his sense of humor well. Hints for reading into the artist’s daily space and objects can be found in his language used in his large-scale text work titled Greve (Strike) (2011). As such, examining the shape, substance, contrast and paradox in arrangement in relation to the images and titles of his work help in understanding the artist’s past works.

Cleverson’s work consisting of found objets—randomly found on the streets—or in truth, persistently hunted down and collected everyday objets. Slightly deviated from their physical properties and arrangement, there is sarcasm about them with unclear object, and strength of attack. The hard texture of material widely used for installation work—concrete, steel, and wood, and their pale grey surface seem somewhat worn down and weathered contradictingly making them look weak and fragile.

Visual alchemy of artists who create emotionally piercing images by collecting easily available fragments of everyday life, and rearranging them in unfamiliar ways, with clearly visible point of contact is seen from time to time. Cleverson’s modernologist-like attitude is similar to this methodology, however it is different from material alchemy or craftsmanship involved with meticulously dealing with the material and structure. Rather, it seemed like the simple repetitive mundane-ness was the driver for his work. For example, his work during his residency in Chile in 2013 called Disvalue was a temporary installation work consisting of placing various coins he found in the streets on the ground into a flat surface. This moral attitude in which creating nothing and discarding nothing are common characteristics among nomadic artists who continuously seek new places. The artist’s narrative of travel grabs one’s attention but what Cleverson seeks might not be a source of light that everyone else is pursuing. He may be seeking something between large flat and shiny, and what is at the opposite extreme.


Just like common everyday objects become historical artifacts of the future, and artifacts that were buried deep in the past returning to today as lively objets, an artist as a modernologist does not stop at being a cultural anthropologist exploring the past, nor being a futurist predicting the future to come. A modernologist is an affectionate nickname that hints at the work of the artist’s wide breadth of placeness and non-linear time. After witnessing the daily changes in Cleverson’s installation, that was the word that lingered on the tip of my tongue. Though, time will tell if he indeed was a modernologist-like artist or will become one.


Vertical yet not at all intimidating nor heroic assemblage installation objects stood attention facing the urban architecture outside the window of Cleverson’s studio where we sat and chat. An old mirror picked up from a corner of the neighborhood, plastic bowls thrown out by a Chinese restaurant down the street, and structures woven with ungainly waste material and plastic bottles are reminiscent of urban decay depicted in the animation, Tekkonkinkreet (A film noir animation directed by Michael Arias adapted from a manga series created by Taiyo Matsumoto that portrays human loneliness in a rapidly growing new town Japan. The title is a mispronunciation of tekkin konkurito—Japanese for steel reinforced concrete.). I am aware that his work that represent the somewhat slapdash aesthetics of a half-built shopping mall construction site, unkempt urban buildings, and the rectangular space of museums is in fact the result of intricate artistic plans, however the structures made of plywood and lumber, and bits of grass and moss peeping through transported me to the warm world of Tekkonkinkreet constructed by the artist.


*The syllables of “reinforced concrete” are rearranged to create an English rendition of Tekkonkinkreet, the title of a Japanese animation.


--

Translation_ Jeongyoon Kim


All Images from http://salvaro.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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