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r united Apr 13. 2020

카운터-투어리스트, 이희준

- 세계의 표정을 읽어내는 노동, 내용을 지워나가는 예술

Counter-Tourist, 이희준

- 세계의 표정을 읽어내는 노동, 내용을 지워나가는 예술




불과 몇 주전, 이희준 작가로부터 새 전시를 준비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지난 해 역삼동에서 열렸던 전시 <Painting Network>에 출품했던 ‘테라조’ 타일 회화 작업을 인상깊게 본 기억이 있지만,[1] 어떤 점을 재미있게 보았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겨를 없이 바쁜 계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다만 회화의 자리를 이탈하지 않으면서도, 작품의 근거를 실재하는 삶의 정경과 편재하는 질료들로부터 이끌어 내고자 하는 분투의 과정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메커니즘적으로 ‘포착’과 ‘저장’, ‘전환’은 시차를 두는 일인데, 어쩌면 태생적으로 동시적 발동이 가능한 이들, 혹은 그러한 방향으로 훈련 받아온 이들이 세계를 추상하고 다른 감각으로 번안하는 일이 조금 더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이희준이 알려 온 전시의 제목, The Tourist가 드러내는 간결한 정서와 명료하게 기술된 작업의 프로세스, 이미 진행 중인 작업의 이미지 모음은 소박한 의견을 글로 옮겨 써 볼 용기를 실어준다. 트립, 트래블, 저니... 조금씩 어감이 다른 유의어들 가운데 투어리스트가 풍기는 함의는 여행과 관광 사이 어디엔가 걸쳐져 있는 깊이-없음, 일시적 탈주, 낭만화된 장소성, 상품화된 체험에 가까운 것들이다. 세계를 이해하기엔 지나치게 짧고, 낯선 곳의 표정을 읽어 내기엔 풍족한 날들이다. 지금 시대에 걸맞은 속도와 감성이라고 하면 너무 안이한 생각일까. 그럼에도, 기획된 탈주의 경험과 부박한 탐사의 파편들이 회화의 속도와 밀도로 옮겨올 것임을, 그런 점을 더욱 기대하게 된다. 다행이다. 바라는 것이 그랜드 투어나 오디세이였다면 글쓰기는 시작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이국의 풍경과 개인의 기억에 깃든 시심이나 낭만적 정서에 동조하는 일은 몰입은 쉽지만 금세 질리는 일이 되고 만다. 창작의 과정이 봉인된 블랙 박스를 열려고 낑낑대는 일은 보람 있지만, 그만큼 피로가 쌓이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내밀한 경험으로부터 촉발된 (편의상) ‘여행- 회화’에 대한 이희준의 실행 계획은 그 자체로 설득력이 있고 직관적이다. 여러 쌍의 대립적 요소들로 이루어진 이미지가 주는 힘과 질서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의 회화 안에 다양하고 풍부한 단서들이 깔려있다. 전시에서 소개되는 시리즈들은 실물 사진과 추상적 붓질이 화면에서 시공간의 켜를 쌓고, 평면 안에서 분할적 구도를 만들어 낸다. 부러 거친 질감의 필터를 씌운 것 같은 회색 조의 사진 이미지들은 그 자체가 회화의 지지대를 이루면서 원경으로 흐릿하게 물러 난다. 거대한 추상 회화 아래로 드러난 파편적 이미지만이 여행의 장소성에 대한 미약한 단서들을 제공한다. 흰 빛이 섞인 파스텔 톤의 민트, 핑크, 크림 색은 실제로는 해당 지역의 풍광을 그대로 반영한 색이기보다는 그 순간에 저장해 놓은 특유의 대기와 광선의 질감, 그 때 그곳의 정취, 대수롭지 않은 경험들과 연합된 주관적 색채 값에 가까울 것이다.  


여행의 실체적 기록을 사변적 기억의 틀로 재가공한 화면들은 그것을 바라보게 되는 나에게도 몇 가지 질문들과 문제화의 가능성을 던져 준다. 실은, 이국의 정취를 작업의 소재로 옮겨 오거나, 여행을 방법론 삼아 기록되고 창작된 텍스트와 이미지를 적잖이 읽고, 보아온 편이다. 도처에 그러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동안 탁월한 여행-예술과 미적 성취를 입증한 사례들, 이동의 궤적 그 자체가 일생의 실천인 이들도 몇몇 떠오른다. 이런 흐름 위에서 작업의 좌표를 가늠하면, The Tourist 에 소개된 작업들은 일시적 여행의 경험이 이후의 작업을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보기에 따라 그것의 추상화된 결과물과 무관하게 전통적인 여행-예술적 산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일상을 벗어난 여행객의 낯선 시선에 포착되는 도시의 색채, 주거와 건축의 차이를 증폭시키는 자잘한 디테일과 인공적 파편들, 지리와 식생같은 비 선택적 조건들은 매력적인 소재를 제공한다. 미술사의 범주 안에서, 통속적인 이미지 생산 공정 상에서, 오늘날의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세계의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의 영역이다. [2]


동시에 이희준이 구사하는 회화적 편집술은 대단히 동시대적인 증상이며, 개인의 특수한 대응 양상이기도 하다. 여행이라는 외재적 장치를 걷어 낸다면, 근본적으로 작가의 최근 작업을 전개해 온 큰 줄기는 이미지 생산과 소비 방식에 대한 메타적 질문을 생성하고, 회화 작업의 방법론을 재 점검하는 행위에 있다. 그려야 할 것을 선택하고 필요가 없는 것들을 배제하는 선택은 개인의 탐구와 궁리로부터 비롯될 것이다. 그렇기에, 여행은 한 개인의 시각적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수정하는 데 있어 우연성을 강화하고, 익숙함을 걷어내는 데 있어 유효한 전략이다. 


그러나 얼핏 여행-예술인 양 보이는 열 다섯 점의 회화들은 장소에의 애착이나 존재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애초에 여행의 기억을 회화적 재료로 사용함에 있어 예고된 불완전함이다. 적극적으로 지워내고, 덧입히고, 번안하고, 재배치하는 행위는 온전히 작가의 몫이다. 일시적으로 저장되었던 감각들이 다른 시공간에서 출력되는 과정을 통해 이미지의 불투명함과 비역사성은 더욱 도드라진다. 아마도 이희준은 여행의 시점에서는 투어리스트였지만, 회화를 제작하는 시점에서는 카운터-투어리스트가 되었을 것이다. 



두텁고, 거대하고, 물질감이 가득한 그의 회화들은 재현적 서사나 특수한 감상이 올라갔을 어떤 면적들을 밀어내고, 깊이를 눌러버리고, 도상을 물감으로 덮어버린 자리로 보인다. 나는 내용을 지워내는 일로부터 오늘날의 이미지 메이커들이 마주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맡아야 할 복잡한 카운터-롤role을 폭넓게 상상해 보게 된다. 


Coffee Farm, 2020, acrylic and photocollage on canvas, 73 x 73cm


여행이란 근본적으로 주어진 시간과 공간, 그리고 피지배 상태로부터의 탈출이다. 또한 누군가의 삶을 지시했던 규칙으로부터의 탈출을 포함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희준의 의도적 “벗어남”은 한 동안 이어질 것이고, 언젠가는 홈 커밍이 전제된 오디세이가 될 것임을 알고 있다. 떠나간 곳에서도 온전한 일상을 살아내고, 머물면서도 마음으로 떠나가는 자의 태도를 새로 만든 단어, “카운터-투어리스트”에 담아 보낸다. 


세계의 표정을 읽는 노동도, 내용을 지워내는 예술도 서로 맞닿은 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Dinner at Ryokan, 2020, acrylic and photocollage on canvas, 73 x 73cm.


          


[1] <Painting Network>(2019. 11.20-12.24), 신한갤러리 역삼, 최정윤 기획, 참여작가: 신현정, 이희준, 전현선. 당시 전시에서 이희준은 베트남, 일본 등지를 여행하며 발견한 ‘테라조’ 타일에서 착안하여 제작한 작업 <유영하는 바닥>을 설치, 발표했다. ‘도끼다시’라고도 부르는 테라조 타일이 가진 재료적 특성을 살려 일부분은 테라조 타일을 노출하고, 어느 부분은 가려지도록 했다. (설명 참조: 페인팅 네트워크 전시도록, 2019)


[2]‘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 이라는 말은 소설가 김훈의 산문집 중 ‘남태평양’ 이라는 글의 첫 문장이다. 스튜디오에서 이희준과 나누었던 대화는 그의 글을 떠올리게 했다. 나에게 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이다. 계절에 실려서 순환하는 풍경들, 노동과 휴식을 반복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 지나가는 것들의 지나가는 꼴들, 느낌과 질감을 내 마음속에 저장하는 것이 내 여행의 목적이다.”  -김훈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 2015, 문학동네



글 조주리(전시기획, 미술비평)




Counter-Tourist, Heejoon Lee

- Laboring to read the world’s face, Art to erase the content



Only a couple of weeks ago, Heejoon Lee had contacted me that he was preparing a new upcoming exhibition. His paintings at the group exhibition, Painting Network, held at Yeoksam-dong were quite remarkable[1], but the time flew by so fast that it was gone before I even had time to reflect on what really intrigued me. However, I thought of his strenuous effort to derive the basis of woks from life sceneries and omnipresent materials within the boundary of painting. In this mechanism, each step of ‘detecting’, ‘preserving’, and ‘transferring’ requires some processing time; but perhaps for those who are gifted or trained to be able to flip the switch at the same time, the process of abstracting the world and adapting it through another sense could be more natural. 


When Lee informed me of the title of the exhibition, The Tourist, I received a concise sentiment, a simply articulated process of the work. A collection of the images of the works in process gave me the courage to write down my humble opinions. Trip, Travel, Journey… The connotation of Tourist to these synonyms with minute differences implies no-depth, lingering somewhere between travel and sightseeing, momentary escape, a romanticized sense of place, and a commodified experience. Those days are too shot to comprehend the world, but long enough to suss out the atmosphere of unfamiliarity. Would it be too naive to say this speed and sense are only suitable in this period of time? Yet, nevertheless, I look forward to his experience in deliberate escape and the particles of shallow exploration being transcended as they are transformed into the painting’s velocity and density. Yet I am relieved. I wouldn’t be able to start writing if it was for Grand Tour or Odyssey. 


Meanwhile when it comes to a poetic or romantic sentiment aroused from foreign sceneries and personal memories, we easily become immersed into them, but at the same time, quickly become disinterested. Similar to the burden of one who unseals the black box through their best effort, the process of creation may be worthwhile, but also triggers fatigue. In that sense, his plan for ‘Travel-Painting’ (for the sake of convenience), which is provoked from inner experience, sounds persuasive and intuitive. The reasons for this can be found in the power and the system of images produced in numerous pairs of contradictory elements.


In fact, diverse and ample evidence is widely scattered throughout his paintings. In his new series of works, the actual photographs and abstract paint strokes are layered in time and space, dividing the composition in a flat plane. As if overlaid with a roughly textured filter, the gray scaled photographs become buttresses for the painting and eventually fade away in a distant view. Only fragmented images under enormous amounts of abstract painting can provide tenuous clues to the sense of place. Mixed with a hint of white light, the pastel tone colors, such as mint, pink, and cream, shall be closer to the subjective color values instantaneously captured with the peculiar air, the texture of light rays, the atmosphere, and ordinary experience than an accurate depiction of color.


Reproducing the record of the trip through contextual memories, the plane also raises several questions and opens the possibility for discussion. In fact, I have encountered numerous texts and images with a similar theme, capturing the exotic moods or trips as a methodology; it is quite common. I can also think of some cases which demonstrated outstanding travel-art and aesthetical accomplishments. Even the trajectory of movement itself becomes the practice of life for some artists. In this context, it is fair to say the works presented in The Tourist can be considered as the outcome of traditional trip-art, regardless of its abstracted nature, because the works were triggered by the instant experience of traveling. 


Being away from mundane life, the tourist captures unfamiliar colors of the city, subtle details and artificial debris that amplify the distinction between residence and architecture, and metamorphoses non-selective conditions, such as geography and vegetation, into attractive subjects. This is all happening in the category of art history, in the conventional process of image production, and in today’s digital platform. It is the boundary of labor to read the facial expressions of the world.[2]


At the same time, Heejoon Lee’s painterly editorial engineering is a symptom of the contemporary while managing to remain his particular individual response to this aspect. If we remove the external apparatus of travel, the artist fundamentally questions the production and the metaphysical consumption of images and double-checks the methodology of painting practice. The choice of what to include and exclude will be based on each individual’s study and consideration. Therefore, travel is a valid tactic to enforce contingency and step away from familiarity. Yet, from the exhibition, the 15 paintings, almost seemingly like travel-art, do not strive to leave their traces or attachment to the places. This was an anticipated imperfection from the beginning because the materials of the works are driven from the memories of the trip. The practice of removing, adding, altering, and relocating are completely up to the artist. When instantly stored senses are extracted in a different time and space, the opacity of images and non-historicity stands out in further contrast. Perhaps Lee was a tourist when traveling, but he becomes a counter-tourist in the paradigm of painting production.


Heavily applied, enormous yet full of texture, the paintings seem to at last push away a specific surface that grounds a certain appreciation or representational narration and covers up such icons with paint. I imagine the complicated counter-role that todays’ image-makers face and will have to take on in the future in a more expansive way.


In a fundamental sense, travel is an escape not only from a given time, space, and the subjugated class, but also from the regulations that control people’s lives. Perhaps Lee’s intentional ‘escape’ may continue for a while, and will someday end up being an Odyssey under the premise of homecoming. I am imbuing the attitude of those who live daily life in a new place and stay there, yet leave in their hearts, to a new term, Counter-Tourist.


I hope the labor to read the facial expressions of the world and the art to erase the content can continue within the common boundary.



Text written by Juri Cho (Curator, Art critic)


          


[1] Painting Network (11.20-12.24, 2019) held at Sinhan Gallery Yeoksam, curated by Jeongyoon Choi, Participating artists: Fay Shine, Heejoon Lee and Hyunsun Jeon.

In this exhibition, Heejoon Lee presented Floating Floor (2019), which encompasses terrazzo tiles he encountered while traveling Vietnam, Japan, etc. He integrated terrazzo tiles, also called do-ggi-da-shi’ into the works, with some parts revealing their unique properties on the surface, and some parts beneath paint. (Referring to the exhibition catalog)


[2] ‘Travel is a labor to read the content and the facial expression of the world,’ is the first sentence of Kim Hoon’s essay, South Pacific. The conversation I had with Heejoon Lee at his studio reminded me of this phrase.

“To me, travel is a labor to read the content and the facial expression of the world. The purpose of my travels is to see the circulating scenes carried by seasons, people living their lives in the repetition of labor and rest and the transient state of things that pass by, and storing feelings and textures in my mind.” – Kim Hoon’s essay, South Pacific, 2015, Munhakdongne





작가의 이전글 안민욱: 세 안민욱의 회고-미래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