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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믿 Nov 10. 2023

전화, 의도가 다분한

"xxx 고객님이시죠"

예비군 동원훈련 첫날이었다. 예상보다 빨리 도착한 탓에 차 안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울릴 리 없는 휴대폰이 진동했다. 전화번호를 보니 ‘053’으로 시작하는 번호였다. 다행히 직장에서 온 전화는 아니었다. 그래도 ‘02’나 ‘070’은 아니었기에 통화 버튼을 눌러 받았다.


“xxx 고객님이시죠?”


맞기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어투나 말의 높낮이, 배어 있는 친절로 무언가 나에게 권유하는 전화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괜찮다고 거절하기 전에 이미 그 사람은 말을 시작해 버렸다. 마치 보험 광고에서 약관조항을 읊은 내레이터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말을 끊을 타이밍을 찾지 못했다. 너무 빨라서 자세한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면, 치과진료를 싸게 받을 수 있다는 식의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체감상 5분은 지났던 것 같다. 그제야 내 의사를 전할 수 있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친구는 말했다. 너는 그냥 다 들어주는구나. 자신은 그냥 끊는다고. 나도 괜찮다고 하고 끊는다. 다만 이번에는 끝없이 이어져 끊을 타이밍을 찾지 못했을 뿐.


그러다 며칠 전 또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침대에서 한창 몽중방황을 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머리맡에 있던 휴대폰의 진동에 화들짝 놀라서 깨버렸다. 이번에도 생각했다. 무슨 일일까. 전화가 올 일이 없는데. 여전히 ‘053’이 찍혀 있었다. 의심 없이 받아 들었다. 뭔가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때 예비군 훈련장, 차 안에서 듣던 목소리였다. 이번에도 똑같이 물었다.


“xxx 고객님이시죠?”


이어지는 상황도 똑같았다. 비몽사몽 하여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듣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랩을 하는 바람에 짜증이 치밀었다.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않고 빨간색 버튼을 눌렀다.


바로 베개에 머리를 맞댔지만 바로 잠에 들지는 못했다. 갑작스러운 진동 소리에 놀랐던 탓일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내 휴대폰을 켜서는 053으로 시작하는 그 번호는 차단 목록에 추가했다. 그러고 나서야 다시 잠에 들 수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시간이 지나자 감정은 사그라들었다. 과연 나의 행동은 괜찮았던 걸까. 최악은 아니었지만, 좋지도 않았다. 분명히 말을 끊더라고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들도 성과라는 게 있을 터다. 그렇기에 승인이 아닌 거절이라면 똑같이 받아들이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수없이 같은 일을 반복해 온 이들에게는. 하지만 같은 거절이라도 좀 더 에두른 편이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 그렇게 결론 내렸다.


차단 목록에 들어가 그 번호를 찾았다. 그리고는 차단을 해제했다. 다만 저장되지 않은 번호는 진동이 울리지 않도록. 방해모드를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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