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믿 Oct 15. 2023

이유가 된 이유

유일한 이유


퇴사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홀로 결정했다. 그렇게 수간호사 선생님께 그만두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병원에 와서 사직서를 내라는 대답을 얻어냈다. 추석 연휴를 끼고 있었기에, 마냥 아무 생각 없이 쉬다가 병원으로 향했다. 오직 사직서만 내고 오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금방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퇴사 면담’이라는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말이 면담이지 그만두지 않게 설득하는 과정이었다. 그만두어야 하는 이유와 그만두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서로 교환하는 장이었다.


거기서 이유로 든 것 중 하나가 바로 ‘이유’였다.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3교대라 들쭉날쭉 바뀌는 생활패턴. 8시간이라 명시되어 있지만 9시간은 거뜬히 넘어가면서 점심시간은 보장하는 않는 근무시간. 복잡하고도 방대한 업무량. 시시각각 바뀌는 상황. 이 모든 요소들을 버텨낼 이유가 내게는 없었다.


의견을 듣고 상대방은 말했다. 이유가 있어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고. 자신도 그냥 버텼다고. 그렇다. 그냥 버티어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유 없이 그러한 업무를 견딜 수 있을 만한 강함이 내게는 없었다. 나는 나약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니체



이렇듯 마땅한 이유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삶의 의미는 아직까지 요원했기에 나는 일의 이유를 찾아야만 했고, 찾지 못했기에 면담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굳혔다. 한 순간은 어떻게든 벗어났다. 허나 불행히도 고통스러운 순간은 반드시 도래한다. 삶이 지속되는 한. 나약한 나는 그때마다 벗어나려 몸부림칠 터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행하기에 앞서 이유를 찾아내야만 한다.


무엇이 이유가 될 수 있을까. 감정은 지양해야 한다. 부정적인 감정은 물론이고, 긍정적인 감정도 바람직하지 않다. 어떠한 감정이든 일시적이기에. 의식을 태워버릴 것만 같은 행복감도 어느 순간 사그라들고, 다시는 떠오르지 못할 듯한 우울감도 어느새 내 곁을 떠나고 없다. 포말처럼 흩어지고 덩그러니 서 있는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화폐 또한 마찬가지다. 화폐는 그저 ‘가치’의 교환수단이다. 굳이 이 일이 아니더라도 화폐는 벌어들일 수 있다. 가치 그 자체가 아니라 교환수단이기에. 그 규모가 크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지금도 수없이 나고 없어지는 직업들 중에 지금 이 일보다 더 많은 화폐를 벌어들일 수 있는 업이 없을까.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이유로 삼아야 하는가. 정답은 없다. 앞서 말한 감정과 화폐가 훌륭한 의미가 되어 삶을 지탱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에게 빌려올 수도 없다. 가르쳐 줄 수도 없다. 이유, 의미는 개개인마다 다르니까. 70억의 인구가 있다면 70억 개의 의미가 있다. 결국 나 스스로 부딪히며 가꾸어낼 수밖에 없다. 움직이지 않으면 찾아낼 수 없다.


작가의 이전글 드디어 넘는 고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