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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믿 Dec 11. 2023

힙한 꼰대

모순이라고 하던가

고용주가 힙한 꼰대라는 말에 꽂혔다. 며칠 간격으로 관련된 내용을 반복했다. 조직에 꼰대는 필요하다는 생각도 지니고 있다.


고개를 끄덕이지는 못했다. 힙한 꼰대라는 게 있을 수 있는 말일까. 그리고 조직에 꼰대는 필요할까. 


꼰대는 무엇인가. 뭔가 고지식한 인물을 떠올리게 된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바로 나온다.   

노인, 기성 새대나 선생을 뜻하는 은어이자 멸칭. 이 의미가 확장되어 연령대와는 상관없이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윗사람 또는 연장자를 비하하는 멸칭으로 사용되는 단어.


이러한 뜻인데 꼰대라고 불려서 기분이 좋은 사람이 있을까. 꼰대는 기본적으로 멸칭이자 혐오표현이라고 본다. 그렇기에 좋은 꼰대라는 말이 있을 수는 있지만 받아들이기 힘들어 보인다. 흔히들 남녀갈등에서 사용되는 ‘한남’이나 ‘한녀’ 같은 혐오표현들. 여기에 ‘좋은’이라는 형용사를 붙인다고 하여 이미지가 반전될 수 있을까. 좋은 한남. 좋은 한녀. 한때 일베 때문에 어미에 ‘노’가 붙는 걸 피하기도 했다. 평범한 경상도 사투리일 뿐인데.


다음으로는 힙함. 원래 의미의 힙함은 ‘다름’에서 왔다. 하지만 단어도 사람이 만들었기에 의미가 변질되곤 한다. 한국에서는 의미가 변질되어 ‘핫하다’, ‘트렌디하다’라는 의미로 변질되었다. 그렇다면 힙한 꼰대는 트렌디하고 핫한 꼰대가 된다. 흠….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날뛴다. 정돈되지 않는다. 애써 진정된 장면 속에는 젊어 보이려고 애쓰는 노인이 보인다.


결코 좋은 이미지는 아니다. 혹여나 '꼰대'라는 단어를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꿀 수 있을까. 완벽히 대치되지는 않지만 책 ‘스틱’의 ‘나쁜 소문을 어떻게 떼어낼 수 있을까?’ 파트를 참고할 수 있겠다. 처음부터 단언한다. 불가능하다고. 다만 다른 메시지로 덮어씌우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실제 행동으로 증명하든가. 차라리 새로운 명칭을 붙이는 게 빠를지도 모르겠다.


애매한 답을 내리고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보려 한다. 조직에 꼰대는 필요한가.


앞서 꼰대의 뜻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 뜻이 영원불변하지는 않는다. 힙하다에 담긴 의미가 바뀌었듯이, 꼰대에 담긴 의미도 바뀔 수 있다. 꼰대는 추상적인 단어다. 실재하지 않는다. 사람마다의 기준도 모호하다. 그래서 실제 사람에게 ‘꼰대’라고 지칭할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의 모든 요소가 꼰대에 부합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꼰대가 아닌 요소와 꼰대인 요소가 모두 섞여 있는 게 사람이다. 그 배합의 비율이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꼰대가 필요한 게 아니라, 꼰대임에도 불구하고 조직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가 정의하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집합체인 꼰대는 조직에 필요하지 않다. 그들은 그릇된 신념을 지키고, 남을 방해한다. 다만 그런 꼰대는 현실에 몇 존재하지 않는다. 꼰대의 요소를 지녔을지라도 종합적으로 조직에 도움이 된다면 그녀 혹은 그는 필요한 사람이다.


너무 당연한 소리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든 사람이 왜 조직에 필요한가. 이렇게 물어보는 게 필요할 듯하다. 그들은 업계에서 오랜 기간 살아남았다. 나이 들었다는 건 살아남았다는 것. 그 경험이 주는 가치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 가치가 크다면 나이 든 사람은 필요하다.


그래, 힙한 꼰대보다는 '멘토'라는 좋은 단어가 있다. 조직은 멘토를 필요로 한다. 선생님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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