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믿 Dec 21. 2023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글쎄요.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까. 


최근 명함을 받고 있다. 짧디 짧았지만 병원에 있을 때는 줄 필요도 받을 필요도 없었던 명함. 그리고 그것에는 직함이 적혀 있다. 그들에게는 직함이 있다. 


그렇다면 나의 직함은 무엇일까. 나를 뭐라고 칭해야 할까. 


원장님은 나를 브랜드 전략가라고 부르는데 내 입으로는 내뱉기가 꺼려진다. 아직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음을 알기에. 직함을 말해야 하는 때가 오면 컨텐츠 마케터라 말한다. 어떻게든 컨텐츠를 만들어내고 있으니까.


직함, 벼슬이나 직책, 직무 따위의 이름. 직함이라 하면 뭔가 딱딱해 보이지만 결국 이것도 하나의 이름이다. 

 

이름을 짓는 데에 큰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 대충 짓고서는 그 이름을 오래 쓴다. 초등학생 때 지은 닉네임 'humpdays'를 아직까지 쓰고 있다. 인스타그램 계정이름인 '글빵사'도 그냥 문득 떠오른 단어를 썼다. 브런치에서의 '강믿' 또한 굳세게 믿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긴 하지만 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이름은 무언가를 식별할 수 있게 만드는 수단이지만, 그 무언가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못한다. 이름은 어쩌면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선문답에서 보았다. 상대방이 ‘너는 누구냐’라고 물었을 때 이름을 말하니 ‘그건 너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핵심은 ‘이름은 나 자신이 아니다’일 터다.


따지고 보면 태어날 때부터, 어쩌면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졌던 이름 석자. 이 이름도 크게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를 식별하는 나의 이름이지만, 나의 의도가 담기지 않았다. 내가 짓지 않았기 때문에. 개명이라도 하면 모르겠지만. 


비슷한 맥락의 내용을 『이것은 작은 브랜드를 위한 책』에서 보았다. 여기서 이름은 '지랫대'라 칭한다. 

이름은 스스로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도, 어떤 역할을 할 수도 없는 보조 동사와 같은 것이다. 그 앞에 의미 있는 동사가 붙어야만 역할을 하는 보조 동사처럼 브랜드가 제대로 역할을 할 때에만 그 의미를 증폭시키는 지렛대의 역할을 한다.


또 같은 책에 마음에 와닿았던 구절이 있다. 

사람이 성공하면 이름을 빛내지만, 이름이 성공해서 사람을 빛내는 법은 없다.
브랜드 실체와 이름과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결국 알맹이를 갖추기 전의 거창한 이름은 허울뿐이다. 의도가 쌓이고, 그 의도가 행동으로 바뀌고, 그게 실적이 되기 전까지 직함이니 이름이니 하는 것들은 이르다. 걷기도 전에 뛸 걱정을 하고 말았다. 

작가의 이전글 물과 기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