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일 뿐이지.
이전 글에서 이렇게 결론 내렸다. ‘커피 향’은 ‘커피 향’이라고 생각하기로.
그럼에도 찜찜했다. 도대체 커피 향이란 무엇일까. 스스로는 답을 못 구했다. 그러나 한 카페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나에게 의문을 제기했던 ‘노아 브루어스’ 사장님이 알려준 대구 카페 중 하나 ‘온니컵 로스터리’.
필터커피를 주문하고 바(bar)에 앉아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기회를 보다가 의문을 그대로 전달했다.
“굳이 노트(향)를 커피에서 느껴야 할까요?”
사장님은 고정관념이라고 답변했다. '커피 향'이라는 건 없다고. 우리가 이름 붙였을 뿐이라고.
우리가 커피를 시작할 때 로스팅이 많이 된 중강배전 원두로 시작해서, 커피의 향과 맛이 이러하다고 단정 짓게 되었다고. 사실 산미 있는 커피로 시작했다면 고소한 커피가 또 이상하게 여겨졌을 거라고.
사실 우리가 느끼는 맛은 다섯 가지. 단맛, 짠맛, 쓴맛, 신맛, 감칠맛. 여기서 다양한 변주를 주는 건 향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향의 종류는 수없이 많다.
커피와 와인, 위스키. 이 음료들의 향이 다양하다고 한다. 그래서 커피맛과 향을 정의 내리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결국 답은 '다양하다'겠지. 우리가 이름 붙인 '커피 향'에도 수없이 많은 향이 섞여 있다. 편의상 그렇게 부를 뿐이다.
예전에 썼던 글이 떠올랐다. 온라인에 게시했던 첫 글이다. 잊고 있었다.
인간은 존재하는 것에 이름을 붙인다. 그것이 형태를 가지고 있든 아니든. 그 대상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속성을 이름에 가두어둔다. 하지만 그 속성은 너무나도 자유로워서 인간이 만들어놓은 우리 밖을 끊임없이 넘나 든다. 사람들이 같은 단어를 보고도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유다.
나는 ‘마리골드’를 꽃의 이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곡의 제목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날 화단 속의 수많은 꽃들 중에서 ‘마리골드’라 이름 붙여진 꽃을 보았다. 그 순간 노랗고 작은 존재는 내가 세워놓은 우리를 손쉽게 뛰어넘어 자리를 잡았다.
‘커피 향’도 인간이 그어 놓은 편리한 울타리에 불과하다. 수없이 많은 향. 아니 향도 우리가 붙인 이름이다. 수많은 것들이 울타리 안을 끊임없이 넘나 든다. 굳이 붙잡아 놓을 필요는 없다. 붙잡을 수도 없고.
그냥 만끽하자.
결론은 같다. 하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이유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