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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쭝이쭝이 Apr 05. 2024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명암

반도체 세계 정상에 섰지만 내리막을 마주하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은 반도체 산업을 '타이밍의 업(業)'이라고 정의했다.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해서 수 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선행 투자를 최적의 시기에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에게 2017~2018년 2년간 수십조 원의 수익을 가져다준 '메모리 슈퍼사이클'은 타이밍의 업이란 반도체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사실 슈퍼사이클 직전인 2016년 상반기까지 반도체 업계나 전문가들 중 그해 하반기부터 서서히 시작될 슈퍼사이클을 예측하지 못했다. 당시 D램(DDR3_4Gb_512 Mx8_1333/1600 MHz 기준) 고정거래가격을 살펴보면 2014년 10월 3.78달러를 기록한 이후 2016년 6월(1.25달러)까지 무려 20개월 동안 한 번도 상승하지 못하고 줄곧 하락세를 이어갔다. 불과 2년도 안돼 D램 가격이 ‘3분의 1’ 토막이 난 것이다. 이로 인해 D램 세계 1위인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영업이익도 2016년 상반기까지 1개 분기 당 2조 원대 중반에 머물렀다.

하지만 2016년 3분기부터 D램 가격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며 삼성전자의 반도체 영업이익도 3조 3700억 원을 기록했고, 4분기엔 4조 9500억 원으로 늘어났다.

당시 삼성전자는 2016년 하반기 '갤럭시노트7' 배터리 폭발 사태로 스마트폰 사업에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갤럭시노트7 리콜과 단종으로 인한 영업손실만 7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돼, 웬만한 대기업 하나가 사라질 정도의 손해를 입었다. 이런 위기에서 맞은 메모리 슈퍼사이클은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와도 같은 초대형 호재였지만, 삼성전자가 유연히 맞은 행운은 아니었다.

삼성의 메모리 기술 초격차와 최적의 타이밍에 결정한 시설 투자, 데이터센터 급성장으로 인한 메모리 시장의 공급 부족 등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삼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메모리 사업이 적자를 기록하는 등 한차례 위기를 맞이한 바 있다. 이 시점에 삼성이 취한 전략이 이른바 '초격차'다. 차차세대 제품 기술까지 미리 개발하고, 시설 투자를 통해 생산능력까지 갖춰, 시장이 침체에 빠지더라도 고가 프리미엄 제품을 적시에 생산해 수익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메모리 슈퍼사이클에 삼성의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일 수 있었던 이유도 초격차 전략 덕분이었다.

삼성전자가 세계 첫 해외 메모리 생산기지인 중국 시안 공장 투자를 결정한 것은 2012년 3월이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중국이 세계 최대 메모리 시장으로 부상할 것으로 확신하고 베이징 등 여러 지역을 두고 공장 신설을 검토했고 최종적으로 시안을 낙점했다. 시안이 중국 정부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 중이던 서부 내륙 대개발의 중심지였고 반도체 공장 입지에 필수적인 용수와 물류, 부지 등의 조건도 맞아떨어졌다. 여기에 시안이 속한 산시성은 시진핑 주석의 고향이기도 하다.

중국 시안 투자 발표 얼마 뒤인 2012년 4월 10일, 권오현 당시 부회장은 직접 전용기를 타고 중국 현지로 날아가 산시성 당국과 낸드플래시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석 달 뒤인 그해 7월엔 세계 최대 규모의 평택 반도체 공장 투자도 결정했다. 당시 삼성은 평택 고덕산업단지에 100조 원을 투입하기로 해 ‘단군 이래 최대 투자’란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그해 글로벌 메모리 시장 상황을 보면 삼성의 대규모 투자 결정은 무리가 있어 보였다.

2012년 한 해 낸드플래시 시장은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떨어지고 재고가 쌓여, 세계 2위 업체였던 도시바는 30% 감산 결정까지 내린 상태였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영업이익도 2010년 10조 1100억 원에서 2011년 7조 3400억 원, 2012년 4조 1700억 원으로 불과 2년 새 60%나 줄어 투자 여력에 의문도 제기됐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이런 투자 판단은 4년 뒤인 2016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메모리 슈퍼사이클을 통해 빛을 발한다. 같은 시기 경쟁업체들은 시설 투자에 소극적이었지만 삼성전자는 선제적 투자를 통해 시안 공장을 2014년 5월, 평택 공장을 2017년 7월부터 가동해 압도적 양산 능력을 과시한다. 그 결과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확고한 세계 1위를 굳혔고 2017년엔 인텔마저 뛰어넘으며 종합 반도체 왕좌를 거머쥐었다.

삼성전자는 2017년 3분기 13조 6500억 원을 벌어들이며 당시까지 사상 최대 실적으로 슈퍼사이클의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그해 9월 이후 D램 가격(DDR4 8Gb 1Gx8 2133MHz 기준)은 추락을 거듭했고 8.19달러였던 고정거래가격은 1달러대까지 폭락을 거듭했다.

"이번엔 다를 것이다"라던 김기남 당시 부회장의 말도 결국 틀린 예측이 되고 말았다.

EUV공정 전용 화성 V1라인.

삼성은 메모리 슈퍼사이클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을 2018년 이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등 시스템반도체 사업에 쏟아부었다. 2030년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라는 야심 찬 목표도 세웠다.

그로부터 6년여의 시간이 지나고 2030년이 6년 앞으로 다가와 반환점을 돈 현시점에서 삼성은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라는 목표를 달성하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메모리 슈퍼사이클을 통해 인텔을 누르고 세계 1위에 올라섰지만, 이후 메모리 초격차 전략이 점차 무뎌지며 기술과 투자의 초점이 파운드리로 이동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현재 메모리에선 엔비디아의 GPU 돌풍과 함께 SK하이닉스가 HBM(고대역폭 메모리) 사업에서 삼성을 앞서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메모리에선 미세공정이 한계에 이르러 더 이상의 초격차 전략도 구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하지만 메모리는 삼성에겐 절대로 포기할 수도, 포기해서도 안 되는 사업이다. 최근 젠슨황 엔비디아 CEO가 삼성전자 12단 HBM 사업을 승인하는 서명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4월 5일 발표한 올 1분기 실적발표에서도 메모리 업황 회복 등에 힘입어 영업이익 6조 6000억 원으로 전년동기(6400억 원) 대비 10배가량 늘어난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기도 했다.

삼성은 메모리 슈퍼사이클 이후 6년 가까이 파운드리 사업에 집중하며 메모리 사업에서 예전 같은 힘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여전히 삼성은 세계 1위 메모리 기업이고 HBM과 낸드플래시 등에서 새롭게 도약하는 회복 탄력성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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