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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쭝이쭝이 Apr 01. 2024

최순실 게이트와 삼성의 위기

실적 호황기에 맞은 총수 구속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두 사람이 선대부터 인연을 이어온 인연을 바탕으로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이란 비선 실세가 국정 전반을 농단한 사건이다.

첫 시작은 2014년 박관천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이 "최순실이 1등, 정윤회가 2등,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는 발언이었지만, 당시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2016년 11월 최서원 씨의 국정 개입 정황이 속속 드러났고 JTBC의 '태블릿PC' 보도가 불을 댕기며, 2017년 3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이 사건에 삼성 등 국내 주요 그룹들이 연루된 것은 최서원이 주도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과 관련한 출연금이 가장 큰 이유였다. 특히 삼성은 최서원의 딸인 정유라에게 승마지원 명목으로 말을 사줬다는 의혹이 더해졌다.

최순실 게이트로 삼성은 국내 기업 중 가장 큰 타격을 입었고,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관련 혐의와 판결 등으로 2번이나 수감(2017년 2월~2018년 2월, 2021년 1월~8월)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사실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되기 직전까지 삼성은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승계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던 시기였다. 당시 이재용 부회장은 2016년 9월 임시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에 오르며 책임경영을 선언했고, 2개월 뒤인 같은 해 11월엔 세계 1위 자동차 전장기업 '하만'을 전격 인수한다.

하만 인수는 국내 M&A 역사상 최대인 80억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9조 4000억 원) 규모였고, 자동차 전장 사업이란 삼성의 새로운 먹거리를 제시한 투자로 평가됐다. 삼성전자의 기존 반도체 경쟁력을 바탕으로 자율주행과 전장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시장을 열 것이란 기대감도 컸다.

재계에선 하만 인수 직후 이재용 부회장이 2016년 연말 인사에서 회장직에 오르며 3세 경영을 공식화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이런 시점에서 뜻하지 않게 불거진 최순실 게이트란 변수는 이런 모든 계획을 한순간에 멈춰 세웠다.

2017~2018년은 삼성전자에겐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천문학적인 영업이익을 기록한 황금기였다. 그러나 이 시기 기업의 리더인 이재용 부회장은 1년가량 수감생활을 했고, 출소한 이후에도 재판 일정 등으로 인해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하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슈퍼사이클 등으로 벌어들인 100조 원이 넘는 돈을 사내에 쌓아두고도 제대로 된 M&A를 한건도 이뤄내지 못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새로운 투자를 시작할 절호의 기회를 놓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이 출소하면서 2018년 새로운 영역에서 또 다른 세계 1위를 목표로 도전하는 승부수를 던진다. 2018년 2월 삼성전자는 경기 화성캠퍼스에 최첨단 공정인 EUV(극자외선) 생산라인을 착공했고, 2020년까지 6조 5000억 원 투자도 결정했다. 또 이재용 부회장은 '2030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세계 1위'라는 새로운 목표도 제시했다.

파운드리는 세계 1위인 대만의 TSMC가 사실상 사업 영역을 개척한 분야다. TSMC 이전까지 미국과 일본, 한국, 유럽 등 주요 반도체 회사들은 스스로 설계와 생산을 모두 하는 종합 반도체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TSMC를 설립한 모리스 창 회장은 미국에서 '텍사스 인스트루먼츠' 등 미국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며, 파운드리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리고 대만으로 돌아가 TSMC를 세우고 일종의 하청 개념으로 반도체 생산에만 집중하는 파운드리 사업을 일궈냈다.

TSMC의 파운드리는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반도체 초격차 기술을 제품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줬다. CPU시장 만년 2위였던 AMD가 1위 인텔을 위협하고 애플이 아이폰에 자체 설계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탑재할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파운드리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TSMC라는 1개 회사가 파운드리 시장을 독점하는 구조는 기존 팹리스 고객사들에게도 생산과 관련한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 특히 대만은 중국과의 양안 문제로 인한 군사적 위험에 노출돼 있어,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를 대체할 수 있는 경쟁 기업은 충분한 존재 가치가 있다.

화성 EUV전용 'V1'라인

삼성은 최순실 게이트로 총수가 구속되는 등 회사가 위기에 처하고, M&A를 총괄하던 미래전략실이 해체되는 상황에서도 파운드리란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는 결정을 한 것이다.

물론 삼성은 2018년 파운드리 사업을 본격화한 이후 현재까지 세계 1위 TSMC와의 점유율 격차를 좁히진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7나노미터 이하 초미세공정이 가능한 생산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업은 삼성과 TSMC 등 2곳에 불과하다. 삼성이 TSMC에 버금가는 기술력을 유지하고 있는 한 파운드리 사업의 성패를 성급하게 판단해선 안된다.

앞으로도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은 가시밭길을 걸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삼성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기업의 위기 상황에서도 기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파운드리 시장 개척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은 충분히 높게 평가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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