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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쭝이쭝이 Apr 08. 2024

중국 '반도체 굴기'의 실체

전자 산업 영토 확장


"제 아무리 뛰어난 명검(名劍)도 그 칼을 쓰는 사람의 오랜 경험과 내공이 승패를 좌우한다."

전자업계 취재를 막 시작했던 2016년 당시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 사이에선 '중국제조 2025'가 화두 중 하나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2015년 이 계획을 발표하며 1조 위안(약 186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2025년을 불과 8개월여 앞둔 현재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20%에도 미치는 수준이다.

2016년 당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양대 반도체 기업 관계자들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너무 부풀려졌다고 입을 모았다. 반도체 경쟁력은 단순히 고가의 제조 장비를 사고, 돈을 쏟아부어 만들 수 없는 '경험'과 '축적'의 산물이란 이유에서다.

중국은 메모리 등 반도체 분야에서 최첨단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언론 플레이를 해왔다. 이를 국내 언론들은 자주 인용하며 '중국 반도체 굴기'로 인해 우리 반도체 산업이 위협받는다고 지속적으로 보도해 왔다.

하지만 반도체 자급률을 기준으로 보면 지난 10년간 중국 반도체 굴기는 사실상 실패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반도체 기업 관계자들은 흔히 반도체 제조를 '빵 만들기'와 '라면 끓이기' 등에 많이 비유하며,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을 설명하곤 한다.

빵 만들기의 경우 아무리 좋은 제빵 기계와 재료를 사들여도, 제빵사의 기술이 떨어지면 맛있는 빵을 만들기 어렵다. 또 라면도 라면 1개를 정말 맛있게 끓인다고 해서, 라면 1000개를 한꺼번에 똑같은 맛으로 끊여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반도체 분야도 이른바 8대 공정이라 불리는 생산 과정에서 회사가 가진 노하우와 기술력이 수율(양품 비율)을 결정짓는다. 아무리 좋은 장비를 갖춰놓아도 생산기술과 경험이 없다면 수율은 0에 수렴할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돈을 쏟아붓는 대규모 투자 등 밀어붙이기 식 전략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성공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 SMIC.

미-중 무역 분쟁 속에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반도체 산업 규제도 반도체 굴기를 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화웨이, 샤오미 등으로 대표되는 중국 전자업체들에게 최첨단 반도체 공급을 막은 것은 치명적인 타격을 줬다. 중국의 대표 기업으로 꼽히던 화웨이는 미국의 강력한 제재로 인해 세계 3위였던 스마트폰 사업에서 해외 시장 경쟁력을 대부분 상실하기도 했다.

반도체 사업에서도 중국 최대 파운드리로 세계 5위권인 SMIC가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르며 최첨단 미세공정 개발이 어려워졌다. 네덜란드 ASML이 독점생산하는 EUV(극자외선) 노광기는 중국 수출이 차단돼, 7나노미터 이하 초미세공정은 대만 TSCM와 한국의 삼성전자 등 2곳만이 기술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강력한 제재 속에서도 한동안 주춤했던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가능성을 다시 열어가고 있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는 미세공정 개발이 한계에 이르며 적층(쌓아 올림) 구조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의 메모리 업체들과의 미세공정 기술 격차를 좁힐 수 있는 기회가 열리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당장 중국이 D램과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기존 제품을 대체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할 가능성은 낮다.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7나노미터 제조에 성공했다지만, EUV 노광기 없이 5나노 이하의 미세공정을 달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중국은 자국 제품 우선 구매, 사용 성향이 강한 탄탄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반도체 등 각종 부품 자급화를 지속 추진해 나갈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난 10년간 '중국제조 2025'는 외관상으론 분명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년 이후 중국의 반도체 산업과 전자업계가 새로운 도약을 시작할 가능성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대기업 중심이란 이유로 인해 삼성전자 등 기업 투자에 전적으로 의존해 성장해 왔다. 이제는 정부가 직접적인 지원에 나서 중국과의 격차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을 새롭게 짜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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