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 일색인 한국 정치의 한계
새로운 정치에 대한 타는 목마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16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이번 총선 패배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모두발언 내용은 한마디로 '내 정책의 방향은 옳지만 국민이 체감을 못하니 합리적 의견은 듣겠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국민들이 기대했던 통렬한 반성이나 쇄신의 메시지는 읽을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정치는 5000만 명이라는 다양한 국민 의견을 서로 타협과 협력으로 절충해 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다수결의 원칙으로 정권이나 권력을 잡았다고 일방통행하면 정치는 실종된다.
국어사전이 정의하고 있는 '정치(政治)'도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역시 핵심은 '상호 간의 이해 조정'이다.
그런데 현재 정치인들은 우파, 좌파, 보수, 진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이 바라는 대한민국을 상정해 놓고 정치권력을 통해 일방적으로 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상호 간의 이해 조정은 실종된 지 오래다.
정치가 이렇게 흘러가게 된 가장 큰 원인으로 나는 특정 직업군에 편향된 정치인 구성을 꼽고 싶다.
야당의 압승으로 끝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검사, 판사, 변호사 등 법조계 인사가 역대 최다인 61명나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전체 300석 중 약 20%에 달한다.
물론 국회의원은 법을 만드는 '입법'이 핵심 역할이니 법 전문가인 법률가들이 많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 전체 직업 구성에서 1%도 안 되는 법률가들이 대의정치를 하는 국회 구성원의 20%를 차지하는 것은 분명 과도하다.
법률가는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소득과 학력 등에서 상류층일 수밖에 없고, 특정 대학 출신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직업군의 결속력도 강하다. 이런 집단에서 사실상 우리나라 정치를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을 봐도 3김 시대가 끝난 이후 노무현, 문재인, 윤석열 등 3명의 대통령이 법률가 출신이었다. 또 현재 대권 후보라고 하는 이재명 대표,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홍준표 대구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조국 대표 등 대부분이 법률가나 법률 전문가 출신이다.
한국 사회에서 서울대 법대가 학벌의 최정점이고, 법률가가 엘리트집단으로 오랫동안 자리 잡아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21세기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문과 출신 법률가가 우리나라의 모든 정치와 정책을 이끌고 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 우려스럽다.
지극히 개인적 의견이지만 윤석열 대통령을 유명하게 만든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도 그가 서울대 법대 출신 검사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수 있다. 검찰 조직 내에서 서울대 법대 출신은 성골 중에 성골이고 그런 그는 굳이 사람에 충성할 필요가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법률가는 직업적으로도 정치를 할 수 있는 기반이 탄탄하다. 일반 직장인은 정치에 도전해 실패하면 백수로 전락하기 때문에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러나 법률가는 선거에 떨어지면 다시 전문직업인으로 활동하며 때를 기다릴 수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법률가 출신 국회의원과 정치인이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내가 만난 많은 직업군 중 가장 출세 지향적이고 학벌을 따지는 사람들이 검사였다. 판사나 변호사가 검사보다는 겉으로 좀 덜하지만 별 차이가 없다.
일반인과의 현실 괴리가 심한 것도 법률가들이다. 그들은 늘 범죄자나 송사에 몰입하다 보니 일반인들은 거의 경험할 일이 없는 특이한 현실을 일반적이라고 인식하는 경향도 강하다.
법률가는 재판 과정에서 유무죄 등 승패가 갈리기 때문에 승소가 목적일 수 밖에 없고, 타협보다는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들어 이기려는 속성도 가지고 있다. 판사 출신들이 그나마 법률가 중에선 균형감이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이런 법률가 집단이 국민의 20%를 대변하는 우리 정치 상황이 언제쯤 바뀔 수 있을지, 과연 바뀔 수는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