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되바라진 예비 며느리였다.
스물다섯. 만으로는 스물셋.
어린 나이라 철딱서니가 없어서 가능했던 일이었고,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짓을 저지른 게 한둘이 아니다.
스물넷, 지금의 남편과 결혼해야겠다고 결심이 섰을 때 나는
"어머님! 저 오빠랑 결혼할래요!"를 외치며 내가 원하는 날짜를 정했고, 상견례 일정만 양가 조율해서 잡았다.
결혼식장도, 드레스도, 웨딩 촬영도 모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정했고 남편은 내가 뭘 하든 그저 좋다고 했다.
지금도 철없는 남편은 그때는 더 어렸고, 경제관념이 없었다.
나보다 오래 사회생활을 했음에도 모아둔 돈이 적었고, 그 미안함에 자신의 의견을 별로 피력하지 않았다.
그래도 말이야, 조금 말려주지 그랬어.
양가 부모님께 금전적 도움은 일절 바라지 않았다.
혹시나 그 도움을 핑계 삼아 시댁에서 며느리로서, 혹은 친정에서 사위로서 무언가를 요구하는 상황이 생기는 게 싫었다.
아무 도리도 다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되 강요받고 싶지 않았다.
간섭받고 싶지 않았다.
"나도 어른이니까 내 가정을 내 뜻대로 꾸릴 거야."
스물다섯 철딱서니가 생각했다.
남편과는 스무 살에 연애를 시작하고, 한 달 만에 어머님을 만났다.
그 나이에 결혼에 무슨 큰 뜻이 있었겠나.
그저 마침 어버이날이었고, 나는 "이렇게 착한 오빠를 낳고 바르게 키워주신 어머님을 보고 싶어!"라는 말로 자연스럽게 약속을 만들었다.
어머님은 연세가 많으셨다.
그 시절에 비해 늦은 결혼을 하셨고, 오빠가 둘째라 우리 할머니와 동갑이셨다.
아들이 둘 뿐이던 어머님에게 나는 아들이 데려온 첫 여자친구였고, 처음부터 참 예뻐해 주셨다.
어려서부터 한참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자랐던 나는 어머님이 편했다.
예의 없게 군적은 없지만, 다른 어른들 눈엔 그리 예쁜 며느릿감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머님은 나를 나무라지 않으셨고, 부족한 모습도 예쁘다 해주셨다.
나는 과일을 잘 깎지 못해서 감자칼을 썼는데, 그게 흠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시댁에 갔을 때도 감자칼로 사과 껍질을 야무지게 깎아 접시에 담아냈고
"이쁘게 잘 깎았죠? 이걸로 했어요!"하고 자랑까지 했다.
그러면 어머님은 "잘했다. 어떻게든 깎아 먹기만 하면 되지." 하시며 웃어주셨다.
일하느라 대근하지 않냐며 옆에 누우라고 하시면 냉큼 누워 어머님께 폭 안겨들었다.
그러다 어머님 뱃살이 눈에 띄어 만지작거리며 "어머님 배 귀여워요." 하면 어머니는 그저 웃으셨다.
나는 항상 "예비 남편이 아무리 좋아도, 그 부모님이 싫다면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어머님 앞에서는 아무 필요가 없었다.
딸이 생긴 것 같다며 옷도 사주시고, 귀걸이도 챙겨주시고, 음식도 한가득 싸주셨다.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한' 결혼을 하고 첫 명절이 다가왔다.
시댁은 제사를 지내는 집이었으나 나는 절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음식 준비는 기꺼이 돕되, 절은 하지 않겠다는 내 뜻을 어머님은 존중해 주셨다.
그래도 아버님 묘에 인사는 드리러 가야 한다고 하셔서, 그건 또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어머님과 남편이 자리 비운 사이 먼 친척 한 분이 내게 말을 건넸다.
"질부는 조상님이 주신 숙제를 해야지."
대충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지만, 모르는 척하며 되물었다.
"저는 제 조상님께 숙제를 받은 적이 없는데요."
다른 친척들은 아직 어린데 무슨 소리냐며 그분을 말렸지만, 그분은 계속 '숙제' 얘기를 하셨다.
혈기왕성하던 나는 결국 발끈해 "따님은 조상님이 주신 숙제를 했나요?"라고 되물었다.
그분의 딸이 나와 동년배이고 아직 시집을 가지 않았던 터라, 대든 셈이었다.
부엌에서 나오시던 어머님은 그 상황을 보시곤, "애한테 별 말을 다 한다."며 그분을 나무라셨다.
그래도 뭔가 분한 마음이 가시질 않아 남편을 찾아 와다다 쏟아내며
"그 어른 진짜 이상해! 다신 보기 싫어!" 해댔고
남편도 원래 그런 말씀을 자주 하시는 분이라며, 앞으로 자기가 옆에 있다가 대신 나서겠다고 나를 달랬다.
지금 돌아보면, 기분 나쁠 법한 얘기긴 했지만 조금 더 부드럽게 넘길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여유가 없던 철부지였다.
어머님은 그 일로 나를 혼내지 않으셨고, 아기는 언제 가질 거냐는 말도 꺼내신 적이 없다.
애급옥오(愛及屋烏)라는 말이 있다.
"사랑이 지붕 위의 까마귀에까지 미친다."는 뜻이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어머님께서 이해하고 품어주셨던 건 '아직 철이 덜 든 며느리에 대한 사랑'이었지 싶다.
어리기만 했던 나를 서운하게 하지 않으셨고, 내 투박한 행동들을 탓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렇게 솔직하게 표현하고, 웃고, 뾰로통했던 철없던 내 모습마저 그냥 "딸 같다." 해주셨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남편이 얄밉게 굴면, 나는 으름장을 놓는다.
"너, 어머님한테 지금 전화해서 다 일러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