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뭐든 사다 줘

by JS

아무 이유 없이 남편이 너무 싫어진 날이었다.

오빠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었고, 그냥 내가 이상했다.

호르몬 때문인지, 피로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이유 없이 찾아온 권태기 같은 건지.

오빠의 장난이 괜히 짜증 났고,

손을 잡거나 안으려는 다정함도 귀찮게 느껴졌다.

그런 내 기분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을 땐, 갑자기 죄책감이 몰려왔다.

'나 왜 이러지. 나 진짜 나쁜 아내 아닐까.'

그 감정은 우울로 이어졌고, 그 우울은 까닭 없이 깊어졌다.



노력한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원인을 모르니,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도 막막했다.

그렇게 나는 며칠을 혼자 끙끙 앓다가, 남편의 퇴근 시간이 다가올 무렵, 결국 카톡 하나를 보냈다.


- 나를 위해 뭐든 사다 줘.


남편은 이유를 묻지도 않고 "알았어."하고 대답했다.

나는 대답을 받고도 마음이 풀리기는커녕, 불도 켜지 않은 집 안에서 한참을 엉엉 울었다.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멋진 남편인데, 그런 남편이 갑자기 싫어진 나 자신이 미웠다.

우린 아무 문제도 없는데.

오빤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해 줬고, 나도 그랬는데?

권태기가 정말 와버린 걸까?

그럼 오빠도 나처럼 갑자기 내가 싫어지면 어떡하지?


불안함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는 혼자 우울의 호수를 열심히 넓혀가고 있었다.

한 발짝만 더 내딛으면, 그 호수에 빠질 것만 같았던 그 순간.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다.


"여보?"

오빠는 다정스럽게 내 이름을 불러가며 깜깜한 집 안에서 나를 찾았다.

정말 뭔가를 사 왔는지 부스럭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자, 남편이 들고 온 꽃다발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빵집의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잠시 멈췄던 눈물이 다시 사정없이 흘러내렸다.

남편을 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안도감이었다.

갑자기 울어대는 내가 이상할 법도 한데 오빠는 이유도 묻지 않고 나를 계속 다독였다.


나 오빠가 싫어졌던 게 아니라, 그냥, 챙김 받고 싶었나 보다.

꽃도 내가 좋아하는 파스텔 톤으로 고르고, 빵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걸로만 골라 담았을 그 마음.

그걸 상상하자, 아까까지 열심히 파내 여의도만큼은 넓어졌던 우울의 호수가 싹 말라버렸다.


나는 그날, 오빠 품에 안겨 며칠간의 마음을 하나하나 꺼내 놓았다.

내가 왜 그랬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괜히 미안하고 혼자 서운하고, 말하기 어려웠던 마음들.

남편은 조용히 내 등을 토닥이며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랬구나, 우리 여보가 요즘 나한테 섭섭한 게 있었나 봐. 주말에 우리 가까운데 놀러라도 갈까?"

그 말이 얼마나 다정하게 들리던지.

무겁지 않아서 좋고, 오버스럽지 않아서 고마웠다.


언젠간 올 거라며 주변에서 겁주던 권태기가 정말 와버린 것 같아 무서웠는데, 더 이상 그 감정이 무섭지 않았다.

어쩌면 언젠가 또 바보처럼 우울의 호수를 다시 파낼지 모르지만, 그땐 오늘처럼, 내 등을 토닥이는 사람과 함께 천천히 건너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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