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 마무리가 늦어져 퇴근이 늦어진 어느 평일 저녁 8시.
그날은 남편도 야근이라 퇴근 시간이 딱 맞아떨어졌다.
아직 저녁도 먹지 못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집에 가서 밥을 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서 내려 나를 데리러 온 남편 차에 올라타자마자 의자부터 뒤로 젖혔다.
그런데 내 상태를 살핀 남편이 먼저,
"여보, 배고프지? 힘드니까 외식할까? 아니면 배달이 편해?"
하고 물어봤다.
오빠도 온종일 일하느라 지치고 배가 고팠을 텐데, 자신보다 나의 상태와 기분을 먼저 생각해 주는 게 고마웠다.
결국 우리는 돼지 국밥 한 그릇을 사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동네 국밥집이었지만, 도전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잡내 없이 진하고 구수한 국밥 국물이 속을 따뜻하게 덥혀줬다.
역시 사람은 탄수화물이 들어가야 심신에 안정이 찾아오는 걸까.
배부르게 국밥을 비우고 나니 한결 기운이 나서 내일 아침은 정성 들여 만든 메뉴로 챙겨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내일 아침은 뭐 먹고 싶어?"
남편은 평소에 아침을 먹는 것보다 잠을 더 자는 걸 선호한다
입맛이 없어 따로 챙겨 먹지 않으려고 하는 날도 많았다.
"안 먹어도 괜찮은데. 음, 샌드위치 사서 갈까?"
마침 근처에 빵집이 있어 내가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려고 빵을 사러 들렀다.
모닝 빵과 식빵을 집어 들고 계산하고 나서는데, 바로 옆 도로를 따라 벚꽃 나무가 길게 펼쳐져 있었다.
살랑 부는 바람에 벚꽃 잎이 흩날렸다.
문득, 내가 바쁜 사이에 봄이 찾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짓자, 남편이 조용히 내 손을 잡으며 물었다.
"드라이브할까?"
이미 하루 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도, 나를 위해 차를 몰아 벚꽃을 보러 가자는 남편이 고마웠다.
우리는 평일 밤, 집 근처 숨은 벚꽃 명소를 따라 천천히 차를 몰았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많은 것이 아니라 관광객도 없었고, 밤에 벚꽃 보러 나온 사람은 더욱 없어서 모든 꽃은 온통 우리 차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