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생들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때 우리 학교에는 수작업으로 학급 신문을 만드는 반이 있었다.
모든 반이 그랬던 건 아니고, 담임 선생님과 학생들이 뜻이 맞으면 자발적으로 만드는 식이었다.
그림에 재능이 있는 친구, 글을 잘 쓰는 친구, 글씨를 예쁘게 쓰는 친구 등등.
각자 잘하는 분야를 도맡아 B4 크기의 도화지를 채워 신문을 만들었는데, 그게 뭐라고 반 전체가 학급 신문이 나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었던 코너는 '앙케이트 조사'였다.
주제는 매번 달랐지만, 학생들 모두가 참여한 투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먼저 펼쳐보는 코너였다.
내 기억에 남는 질문은 두 가지였다.
"우리 반에서 가장 빨리 결혼할 것 같은 사람은?"
"20년 뒤, 아이를 가장 많이 낳았을 것 같은 사람은?"
이 질문들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간단했다.
두 질문 모두, 반 친구들의 몰표를 받아 내가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앙케이트는 단순히 투표만 하는 게 아니라, 이유도 적어야 했는데 이유들이 학생답게 단순했다.
- 대가족이어서
- 가정적일 것 같아서
- 아기를 좋아해서
시답잖은 이유들로 영광의 1위를 차지한 나는, 시간이 흐른 지금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우리 반에서 가장 먼저 결혼한 친구는 20살이 되자마자 결혼식을 올렸고, 이미 아이를 셋, 넷 낳아 기르고 있는 동창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25살에 결혼했고, 아직 아이는 없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해줬더니,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여보랑 결혼하고 싶었던 애들이 여보한테 투표한 거 아니야!?"
오빠 눈에만 예쁜거라 말하며, 덧붙였다.
"우리 반엔 여학생 밖에 없었어."
그 말을 듣고 남편은 싱글벙글했다.
그리고 별스럽지 않게 다음 말을 이어했다.
"그래도, 결국 다들 여보가 좋은 가정을 이룰 거라고 생각한 거잖아."
남편은 그 점이 중요하다고 했다.
결혼을 빨리 할 것 같은 사람, 아이를 많이 낳을 것 같은 사람,
결국 그 질문들은 행복한 가정을 꾸릴 것 같은 사람을 묻는 것이었고,
그렇다면 친구들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지만, 이미 남편의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나야 어쨌든 예상을 빗나간 1위였지만, 남편은 본인 생각대로 딱 맞아떨어지는 결과라며 더없이 흐뭇해 보였다.
결국, 학급 신문에 적힌 예상들은 어긋났지만, 적어도 한 사람은, 그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