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한 번에 변하지 않고 천천히 물든다.
좋은 사람을 곁에 두면 자연히 그 사람의 성향이 나에게 묻어난다.
그래서 어른들이 친구를 잘 사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나 보다.
그렇다면 배우자는 얼마나 중요할까.
같이 살게 된 타인,
내가 사랑해서 선택한 내 인생의 친구,
태어날 땐 가족이 아니었으나 내 선택으로 가족이 된 사람.
나는 돈에 대해 늘 조급한 사람이었다.
18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고,
성인이 된 후에는 생활비를 직접 벌어 충당했다.
비상금을 모으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생각했고,
내 마음을 안심시키는 건 통장 잔고였다.
한 달 저축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날엔 막연한 불안감이 따라붙었다.
결혼한 후에도 이런 문제는 여과 없이 드러났다.
남편과 나의 수입에 비해 과한 저축에 집착했고, 덜 쓰고 덜 먹고 덜 즐기며 신혼 초를 전전긍긍 보냈다.
오늘 치킨 한 마리 시켜 먹는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그게 그렇게 안 됐다.
친구들이 놀러 오면 이것저것 다 시켜 나눠 먹으면서도, 남편과 단둘이 있는 날엔 내가 일에 지쳐 녹초가 되어도 직접 밥을 해 먹어야 죄책감이 덜 들었다.
남편의 금전적인 감각은 나와 완전히 달랐다.
그달에 번 건 그달에 모두 써도 상관없었고, 조금 더 썼다면 다음 달에 조금 덜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다르다 보니 불편할 법도 한데, 오빠는 그런 나를 답답해하기보다 기다려주었다.
가끔 지나가는 말로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 우린 충분히 잘하고 있어."하고 다독이기만 했다.
만약 정색하며 조언했더라면 스트레스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은 그저 흘러가는 말들로 던져두기만 했고 내가 주워듣지 않으면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내가 강요하는 절약에 힘들었을 텐데도 "여보랑 같이 있으면 뭐든 좋다."며 묵묵히 맞춰줬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서 나는 적당한 저축의 선을 알게 되었다.
지금 행복할 수 있을 만큼 적당히 쓰고,
기분 좋을 만큼 아끼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자연스럽게 익혀갔다.
오빠가 던져두고 간 말의 씨앗들이 싹을 틔운 것이다.
요즘은 평일에 한 번쯤은 배달 음식도 시켜 먹고,
주말엔 외식도 하고,
가고 싶었던 여행지에서 비싼 밥 한 끼쯤 분위기를 내보기도 한다.
그 모든 시간이 나에게 돈에 매이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대화하다 보면 굳이 자세히 묻지 않아도 친구가 잘 지내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있을 때가 있다.
각자 주어진 삶을 바쁘게 살다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행복해 보여.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아."
그 말에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 같아."
꼭 물질로만 여유가 생기는 건 아니더라.
나는 그런 줄만 알고 살았는데,
내 안에도 이런 여유가 자라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
내 마음에 싹이 틀 수 있도록, 씨를 뿌리고 기다려준 남편에게 감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