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혼자 여성복 매장에 갔다

by JS

남편이 서울로 출장을 갔다.

자주는 아니지만, 한 달에 한두 번은 있는 일이다.

출장 날엔 아침 일찍 올라가서 밤늦게 내려오기 때문에, 기다리는 나는 그날 하루가 유독 길게 느껴진다.

그래도 예전보다 출장이 많이 줄었으니, 이 정도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어느 날, 출장 간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바빠?"

항상 느긋한 성격인지라 급한 일이 아니면 전화를 잘하지 않던 사람이 출장지에서 전화를 하니, 순간 무슨 일인가 싶어 조금 놀랐다.

"아니, 무슨 일이야?"

내 대답에 남편은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출장지에서 할 일을 마친 후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시간이 남아 팀원들과 근처 아울렛에 들렀고, 남자들끼리 간 터라 각자 보고 싶은 매장을 따로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은 여성복 매장에 가서 내게 선물로 줄 옷을 고르다가 딱 어울릴만한 스웨터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바쁘지 않으면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줄 테니 확인해 달라며 전화를 끊었다.



내 남편이. 여성복 매장에 혼자 가다니.

이건 정말 놀라운 발전이야.

그런 생각을 하며 받은 스웨터 사진을 본 순간, 솔직히 말하자면 실망스러웠다.

내 취향이 아니어도 너무 아니었다.

평소에 이런 스타일은 입어본 적도 없다.

애초에 스웨터가 별로 없기도 하지.


보내온 사진 두 장은 같은 디자인의 옷이었고, 색만 파란색과 흰색으로 달랐다.

어떤 색이 더 좋냐고 물어보는 남편에게 차마 "다른 디자인은 없어?"하고 물을 수 없었다.

얼마나 소심쟁이 남편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데, 나를 생각해서 여성복 매장에 혼자 갔다지 않은가.

나는 고민 끝에 차악을 고르기로 하고 "파란색이 좋아."하고 답장을 보냈다.



다시 전화가 온 남편은 사이즈를 점원에게 물어볼 용기는 없었던지 M과 L 중 어떤 걸 사야 할지를 내게 물었다.

사이즈 선택까지 끝내고 나자, 이제 옷을 계산하고 팀원들과 다시 만나러 가야겠다며 신난 목소리로 전화를 마무리했다.




나는 고마운 마음보다 다른 고민에 휩싸였다.

'비싼 옷 같은데, 자주 못 입으면 어떡하지?'

'이번 겨울에 자주 입어서 본전을 뽑아야 할 것 같은데, 나한테 안 어울리면 어쩌지?'

'입었는데 마음에 안 들면, 리액션은 어떻게 해줘야 하지?'

'내가 자주 안 입으면 속상해할 텐데.'

잠시 후에 고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아 그냥 출장을 마치고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기로 했다.



집에 도착한 남편은 평소처럼 다녀왔다고 인사하며 포옹을 한 뒤 쇼핑백을 내밀었다.

"옷! 여보 옷!"

자랑스러움이 듬뿍 묻어나는 얼굴 표정에 피식 웃음이 났고, 쇼핑백을 열어 옷을 꺼내보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사진보다 실물이 낫다는 것 정도?

남편이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바람에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옷에 몸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거울 앞에 서서 보니 의외로 괜찮았다.

"음? 의외로 괜찮네?"

"의외라니! 엄청 잘 어울린단 말이야. 내가 진짜 잘 고른 것 같아. 물론, 여보는 뭘 입어도 예쁘지만."

신난 남편은 그 뒤로도 옷을 정리하는 내 뒤를 따라다니며, 앞으로도 자주 옷을 사주겠다느니, 이런 스타일도 잘 어울리니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해봐야 한다느니, 쉴 틈 없이 쫑알거렸다.




걱정했던 것보다 옷도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뿌듯해하고 들뜬 남편의 모습에 '가끔은 이런 이벤트도 괜찮네.' 싶었다.

그 겨울, 나는 가벼운 외출을 할 때마다 그 스웨터를 즐겨 입었다.

스웨터를 입을 때마다 그날의 남편 표정이 떠올라 괜히 입꼬리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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