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를 따려고 준비하던 때, 나는 남편과 한창 연애 중이었다.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실기시험을 준비할 때, 남편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기능 시험도 도로 주행도 남편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한 번에 합격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운전은 가족에게 배우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남편은 초보인 나를 가르치면서도 화 한 번 내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처럼 되지 않아 속상해하는 나를 다독여줬다.
덕분에 학원 수업 중에는 선생님이 내게 "면허를 이미 따봤던 사람 같다."라고 말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렇게 면허를 딴 지도 벌써 10년.
갱신 시기가 다가오고 나서야 문득 '나, 오빠랑 정말 오래 함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대기하고 싶지 않아 증명사진을 새로 찍고, 인터넷으로 미리 신청까지 해둔 뒤 경찰서에 찾으러 가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사진을 올렸더니 경고창이 뜨며 '동일인이 아닙니다.'라는 메시지가 반복해서 떴다.
내가 나인데, 동일인이 아니라면 나는 누구란 말인가.
순간 어이가 없어서 멍해졌다.
알아보니 가끔 그런 경우가 있고, 이럴 땐 경찰서나 운전면허 시험장에 직접 방문해서 신청부터 발급까지 모든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나는 '역변한(?) 나의 외모' 덕분에 꼼짝없이 방문해서 대기하게 생겼다.
그제야 그동안 별생각 없이 넣어두고 신분증이 필요할 때만 꺼내 썼던 면허증 속 사진을 들여다봤다.
진한 화장, 염색한 머리, 차려입은 정장, 한껏 멋을 낸 이십 대 초반의 내가 미소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이번에 새로 찍은 증명사진.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 안경을 쓰고 편안한 복장으로 앉아 있는 지금의 내가 있었다.
염색은 언제가 마지막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어쩐지 얼굴의 선이 좀 둥글어진 것 같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동일인으로 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이 상황을 얘기해 주자, 오빠는 내가 기분이 상했을까 봐 걱정됐는지 대뜸 "시스템이 뭐 그래?"라며 화를 내주었다.
사실 예전과 비교해 많이 변한 내 모습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울적해질 법도 했으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이때처럼 매일 꾸미지 않아서, 섭섭해?"
"무슨 소리야? 여보는 생얼이 더 예뻐."
"나 10년 사이에 폭삭 늙었나 봐."
"아니야. 우리 여보는 최고 동안이야. 지금도 아무도 삼십대로 안 봐."
위로라고 표현해야 할까?
울적해진 적이 없으니, 그냥 울적해지지 않은 이유라고 해야 할까.
남편의 입발린 아부성 칭찬 때문이 아니라, 나는 정말로 변한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오빠가 그동안 높여둔 나의 자존감이 대단히 한몫했겠지만.
누군가에게 보이는 미의 기준으로만 본다면, 예전보다 덜 가꿨다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사진 속 나는 편안해 보였고, 행복해 보였다.
지난 10년의 시간 동안 나를 아껴주고 사랑하며 잘 살아온 것 같았다.
지금은 돌아가신 증조할머니를 아주 오래전에 뵈러 갔을 때, 어렸던 나는 할머니 이마에 주름이 신기해 계속 만져봤었다.
할머니가 웃으면 눈가며 이마에 고운 주름이 짙어졌다.
나는 할머니 얼굴에 그 주름이 웃는 모양으로 자리 잡힌 것이 좋아서, 앞으로도 할머니가 웃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그 웃는 주름을 만들어냈는지 어렸던 내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할머니가 자주 웃으셨고 그 웃음이 삶을 따라 얼굴에 곱게 새겨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문뜩 할머니가 떠올랐을 때, 나도 나이가 들면 예쁘게 웃는 모양으로 주름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에 찍은 이 사진이, 내가 그렇게 살고 있다고 조용히 알려주는 것 같았다.
뜻밖에 마주한 변한 내 모습에 오히려 살풋 웃음이 낫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내 인생이 날마다 행복해서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라고 생각했던 날 선 이십 대의 나는 조금씩 사라지고,
"내 주변엔 좋은 사람이 참 많아서 감사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삼십 대가 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