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어를 키운다2

아직도 관상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by 사단화

지금 날씨는 참 짓궂다. 이런 날이면 윌리가 오던 날이 번뜩하고 떠오른다. 물론 윌리를 데려온 날은 날씨가 굉장히 쨍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응당 날씨 탓이 아닐 것이다. 그냥, 사라져 버린 친구들이 문득 떠오름에.




물생활의 시작과 끝


물놀이를 하지 않는 사람도 다들 한 번씩 들어봤을, 모든 대형마트에는 꼭 있으면서 어항계의 영원한 푸들 바로 '구피'다. 이들은 그 이름만으로도 찬란하며 빛이 난다(물이 잘 잡히고, 빛이 들어야 발색이 예쁘다). 많은 사람들은 얘기한다.


"물생활은 구피로 시작해서 구피로 끝난다."


그런 구피를 점심시간 밥을 먹으러 간 홈플X스에서 처음 만났다. 30년 정도를 살면서 관상어든 생물이든 큰 관심이 없던 터라 구피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괜찮다. 어차피 구피들도 나를 몰랐을 테니 같은 걸로 치자. 움직이는 게 참 신기했다. 저 작은 아이들이 물속에서 움직이다니! 마리모 친구들이랑 달리 너무 생동감 넘쳤다. 내 짧은 삶에 새로운 무지개가 뜨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구피를 레인보우 피쉬라고 부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예전부터 우리 모두는 무지개의 끝을 보고 싶지 않았던가. 그래서 무지개의 끝에서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싶지 않았던가! 큰 꿈을 실행할 날이 나에게도 왔다. 무지개처럼, 갑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모르는 것들을 알 필요가 있었다. 마트 수족관 담당 직원에게 물었다.

"구피 키우려면 뭐가 필요하나요?"

홈플러스는 더운 여름에 충분히 시원했는데 그녀의 대답은 시원치 않았다. 그냥 여과기를 달고 히터만 달고 수초 안 키울 거면 그 정도만 있으면 된다니. 여과기는 도대체 뭐고, 히터는 뭔가. 여름철 에어컨 빵빵한 사무실에 나 냉방병 안 걸리기 위한 1인용 히터를 의미하는가. 당최 알 수 없는 이야기만 듣다가, 레인보우들을 눈으로만 담은 채 돌아왔다. 그리고 모든 직장인들의 시간 커피타임과 쇼핑타임을 이용하여 구피 사육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 결과는 참담.


2000원의 닭꼬치 몸값을 자랑하는 구피 1마리 개체를 어항에 넣고 사무실 옆에서 관찰하기 위해서는 어항을 사야 했고, 산 어항의 실리콘 독을 제거해야 했으며 박테리아가 잘 살 수 있도록 여과기를 돌려서 물을 만들어줘야 했다. 이 과정이 이미 한 달 이상이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지역 별 수질 상태 파악, 염소 제거, 질산염/아질산 수치 파악, PH농도, PH에 영향을 주는 유목과 돌의 구분, 구피들이 걸리는 병과 원인, 대처법들을 배워야 했으며 밥의 종류, 임신 확인법, 치어 관리법, 움직임 이상 등 수많은 정보를 알아야 했다. 3cm~5cm짜리 2000원 레인보우는 엄청난 공부와 인내를 요했다.

사무실 옆 사람과 의기투합하여 인당 1.5만 원만 투자하여 엄청난 행복을 누리자는 계획은 커피타임을 수조 물품 가격과 정보에 투자한 결과 산산조각 나게 되었다. 생물을 만 오천 원에 키우겠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었다. 이내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싼 게 비지떡이다. 원래부터 떡은 좋아하나 비지로 만든 떡은 먹고 싶지 않았다. 그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물고기는 인생을 가르쳐준다. 아 아직 물고기는 한 마리도 키우기 전이다. 그리고 새삼 점심값으로 만원 투자하는 건 그렇게 괜찮으면서, 횟값으로 5만 원 내는 것도 괜찮으면서 어항에 5천 원을 아낀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이내 당당하게 '최저가 검색'을 클릭했다.


'싼 어항들은 비지로 만들지 않는다. 싼 재질과 미숙한 마감처리일 수는 있지만….'


그리고 최저가로 맞췄다. 가성비를 넘어선 가심비의 끝판왕으로. 그래도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어항에 어항 규격에 맞는 여과기와 히터기, 사료, 다양한 약품 등을 1차로 맞추기 위해서는 10만 원 정도의 돈이 들었다. 술을 몇 번이고 참을 각오였다(이틀 정도 지속된 다짐이었다. 꿀팁! 술을 3일 참은 후에 마신 소주가 그렇게 달더라).



도착했다, 기다렸다, 또 기다렸다.


가심비를 완성하기 위해 점심시간을 이용했다. 발이 묶인 존재이기 때문에 유일한 자유시간을 이용할 수밖에. 그래서 달렸다. 가진 것이라고는 건강한 두 다리뿐이니 인근 하천으로 걸었다. 신나게 걷다 보니 치명적 실수를 발견했다. 하천을 볼 수는 있으나 들어갈 수가 없었다. 도심의 하천은 철저히 관상용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물에 넣을 것이니 물 안에 있는 돌을 줍기 원했으나 도리가 없었다. 아참, 물고기는 예민한 동물이라 PH가 중요하다 했다. 그래서 PH에 영향이 적은 화산석을 넣어야 한다더라. 최대한 화석석 같은 것들로 위주로 줍고 돌아왔다. 나도 아무리 기분 나빠도 그렇게 예민하게 안 구는데 또 산성인 식초도 먹고, 알칼리 물도 먹는데 예민한 놈들…. 일단 돈을 썼으니 참자.

돌아오는 길, 어느 꽃집에서 현무암을 달아서 꾸며놓은 모빌(?)을 발견했다. 주변을 살피고, 주인이 있나 없나를 살폈다. 고요했다. 지금이라면 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열심히 복귀했다. 훔칠 수는 없으니, 그렇다고 살 수도 없는데.

사무실로 복귀하니 기다리던 택배가 도착했다. 큰 상자 몇 개를 신나게 뜯으며 물품을 하나하나 검수했다. 아니, 검수를 못했다. 아는 게 없으니 그냥 봤다. 그리고 친절히 얼굴 모를 인터넷 상 아무개 씨가 알려준 방법대로 어항을 씻고 물을 채우고 그냥 뒀다. 일주일 물을 버리고 새물로 교체하고 여과기를 틀고, 에어레이션을 하고 히터를 틀어놓으면 된다고 했다. 일주일 뭐 생각보다 짧으니깐! 동시에 하천에서 들고 온 돌들을 열심히 칫솔질해주었다. 아마 내 이를 그렇게 닦았으면 치과비가 300만 원 이상 아껴졌지 않았을까. 세제까지 묻혀가며 닦았다. 그리고 회사 옥상 일광욕을 시켜주었다. 그리고 다시 물에 넣고 끓였다. 또 일광욕을 시켜주었다. 나도 선텐이하고 싶었다. 돌들도 하는 선탠은 나를 할 수 없었다. 회사의 노예였고 이미 충분히 눈치 보이는 짓을 하고 있으니.



일주일 후 기다렸다, 또 기다렸다.


어항의 물을 드디어 버릴 때가 되었다. 신났다. 30L가 넘는 물을 한 번에 버린다는 쾌감, 그리고 이제 곧 물고기를 넣을 수 있다는 기대감!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일주일이 넘도록 기다린 물을 버리는 데에는 5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수돗물을 받았다. 이때는 열심히 말려둔 바닥재와 돌멩이들을 깔고, 히터를 달고, 여과기를 달고, 콩돌을 설치하고 물을 넣었다. 아! 어린 물고기를 잘 낳는 구피 특성상 치어들이 죽지 않기 위해서는 수초도 필요하다고 해서 부추같이 생긴 풀떼기와 이상한 돌에 실로 묶는 풀떼기 그리고 개운죽도 샀다. 그것도 잘 심고, 조심히 미리 이틀 전 받아 놓은(염소 제거 ㅡㅡ) 물로 채워주었다.

더 큰 쾌감이 몰려왔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진짜 어항이 완성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눈이 좋지 못하다. 그래서 어항 안에 있는 잔존 생물, 물질들을 보지 못한다. 그냥 물이 맑네 맑지 않네 정도만 구분한다. 일단 맑은 물이니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바로 물고기를 넣어도 될 거 같았다. 둘째, 나는 월급이 많지 않다. 그래서 최대한 월급 외에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절차로 루팡짓을 해야 하는데 그게 물세와 전기세였다. 시원한 선풍기, 어항의 조명, 히터, 공기 발생기 등등 다른 사람에 비해 조금이라도 더 전기세를 써야 했고, 물을 써야 했는데 그걸 어항이 충족시켜 주었다.


아, 사장님 물론 장난입니다! 사랑해요~ ^^v 뿌잉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빨간색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쾌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고도 한참, 아주 한참 뒤에나 물고기를 넣을 수 있었다. 모든 유투버 물생활 선배님들은 물잡이는 오래 할수록 좋다는 말만 하였고, 왕도와 정답은 없지만 정석은 오랜 물잡이라 했다. 내가 정석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수학의 정석 이후에는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여하튼 기다리란다. 월급날도 그렇게 안 오는데 하물며 물고기를 어항에 넣는 날이야 더 안 오겠지. 그래 안 올 거다. 이때가 홈X러스에서 담당 직원한테 질문을 하고 이미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망부석 설화의 교훈은 다음과 같다.


기다리다 똥된다. 아닌가, 못 기다리면 똥된다는 건가.


-3편에서 계속


keyword
작가의 이전글관상어를 키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