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없다
음주가무를 즐기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나의 캘린더에는 한 달 전부터
토요일을 꽉 채우는 습관이 있었다.
일을 시작한 후부터는 더욱더 소중해진 주말이라
없는 약속도 만들어 주말을 꽉 채워나갔다.
집순이가 아니라기에는 집에서 뒹구는 시간을 사랑했지만
누군가를 만남으로써 채워지는 시간이 의미 있다 생각해
많은 약속을 잡았고 그만큼 즐거웠다.
결혼을 한 후에도 변함이 없었고, 아이를 낳은 뒤에도
가족들과 여행을 가거나 외출을 했다.
최근까지도 일을 마친 후 토요일은 아이를 재우고
저녁 약속을 잡고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다른 곳을 가서
주말을 만끽해야 주일의 보상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매주 돌아오는 토요일
아이를 재우며 폭신한 베개에 파묻혀 그대로 자고 싶었다.
그러나 미리 잡아 놓은 약속이 있어 부랴부랴 챙겨나갔다.
이상하게 말하는 것도
말을 듣는 것도 지치고 집에 가고 싶었다.
"오늘은 먼저 갈게"
나 답지 않다는 말을 들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냥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다음 날 당일치기로 여행 계획을 잡아
새벽 6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겠지 싶어
별 일 아니라 생각했고 다시 토요일이 돌아왔다.
금요일 밤부터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내일 약속이 취소됐으면 좋겠다'
나의 마음이 통한 건지 다음날 아침
친구로부터 미안하지만 다음에 보자는 말을 들었다.
아무 약속도 없는 토요일
원래라면 나갈 시간에 혼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간단하게 술을 마셨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아무 말도 듣지 않아도 묘하게 즐거웠다.
12시면 피곤해서 집에 갔던 내가
새벽 3시까지 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다음날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만들기도 하고, 요리도 같이 하며
낮잠도 자다 보니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행복하게 웃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아 너무 쉼 없이 지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면 뒤쳐지는 느낌을 받았고,
누군가의 약속에 응하지 않으면 겉도는 기분이 들었기에
나를 혹사시켜가며 무리한 주말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무언가를 하고, 어디를 가야만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제대로 생각하기 위해
잠깐 쉬어가기로 했다.
이제 나의 캘린더는 한산하다.
꼭 보고 싶은 사람들만 만나고
꼭 해야 할 일들만 우선적으로 한 뒤
가족들과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따분하고 심심할 수도 있겠지만
언제까지일지 모르는 이 따분함과 심심함에
꽤나 감사하고 충분히 만족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