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짝을 찾기 위한 본능이 내재되어 있는 것인지, 우리의 사회가 짝이 없음을 외롭게 만드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성을 인식하고 난 이후로부터는 나이에 상관없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끊이질 않았다.
나에게 그 사랑이란 것은 10대에는 짝사랑이나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한 동경이었고 20대에는 본격적으로 연애, 사랑에 대한 갈증이 가장 심했던 때였다. 청춘이라는 엔도르핀이 넘쳐흘렀던 그때의 사랑은 저돌적이며 불타올랐고 '사랑이 변하니'란 문장을 굉장히 좋아했었다.
그러다 20대 후반에 접어들며 사랑은 결혼으로 자연스레 연결되었다.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어린 시절에.
결혼이라는 것은 마주하고 보니 굉장히 복합적이고 복잡해서 나 또한 결혼에 대한 가치관과 배우자에 대한 기준이 모호했었다.
그런 생각을 할 때쯤 한 모임에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정확히는 '배우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일단 내 성격 다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술은 안 했으면 좋겠고, 담배는 완전 질색이야. 가정적이었으면 좋겠고 월수입은 혼자 벌어도 충분할 정도의 전문직이었으면 하고, 내 말에 토 다는 건 너무 싫어 간섭하는 꼰대는 더 싫고! 외모는 내 이상형에 가까웠으면 좋겠는데.. 성격만 좋으면 외모는 보통 이어도 좋아 주위에 이런 사람 없냐?"
"그럼 너는 그 사람 성격 받아줄 수 있고? 술도 끊고 할 수 있고?"
"아니 나를 다 이해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런 사람이 너랑 왜 결혼하겠냐"
내 말에 친구는 기분이 상한 듯 보였지만 나 또한 더 말하고 싶은 것을 삼켰다.
불편했던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모호했던 내 가치관은 확실해졌다.
나의 부족함과 상대의 부족함을 서로가 채워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서로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났고, 결혼을 했고 나는 행복하다.
365일 죽을 때까지 계속 행복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사람과 함께 가는 삶이라는 길에서 가시덤불을 지나면 상처 입은 곳을 서로 치유해주고, 꽃길을 걸으면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지금 이 시간의 소중함과 행복함을 누리고 있는 건 사실이다.
좋은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이 있다는 말과 끼리끼리라는 단어의 뜻을 우리는 주위만 둘러봐도 알 수가 있다.
아직도 이유를 모르고 백마 탄 왕자님만 찾거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만 기다리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내 자신이 멋진 사람이면 내 주위에도 멋진 사람들만 가득할 테고, 나의 부족한 부분은 상대에게도 있을 수 있으며, 결혼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임을 인정한다면
더 좋은 사람과 더 좋은 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