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코

엉킨 실타래 푸는 두 가지 방법

by 북극곰

싱그러운 여름이 지나고, 온 거리가 울긋불긋 단풍으로 예쁘게 물들면 나는 뜨개질을 시작한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빨간색 털실로 한코 한코 대바늘을 움직인다. 하지만 옷장 안에는 완성된 목도리는 하나도 없다. 매번 코를 하나 빠트리고 다시 뜨개질을 풀고 시작하는 습관 때문이다. 가을비가 내리던 날, 겨울을 기다리며 목도리를 뜨기 위해 옷장 속 털실뭉치를 꺼냈다. 엉키고 풀기를 반복했던 털실은 어느새 부드러움을 잃고 여기저기 보풀이 일어난 채 라면 면발처럼 곱슬거렸다. 구불거리는 털실로 목도리를 뜨다가 평행이론처럼 그만 실타래가 엉켜 버리고 말았다. 나는 한 뼘 정도 뜬 목도리를 가위로 잘라내고 다시 바늘을 들었다.


엉킨 실타래 매듭을 푸는 방법은 두 가지다. 잘라버리거나, 시작점을 찾아 한 올 한 올 천천히 매듭 끝을 찾는 것. 나는 항상 전자를 택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불필요한 감정을 가위로 싹둑 잘라 쓰레기통에 버렸다. 간단했고, 빠르고 쉬웠다. 물론, 처음에는 나도 엉킨 실타래를 풀어보려고 했던 적도 있었지만 매듭은 좀처럼 잘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간 사람, 묵은 감정, 뒤늦은 후회가 엉킨 실타래처럼 얽히며 마음 속을 휘감았다. 그래서일까. 성격이 급한 나는 실을 자르고 다시 시작하는 것을 선택했다.


다시 실과 바늘을 잡고 시작했지만 실은 계속 엉켰다. 한 번 꼬인 실타래는 자르고 또 잘라도, 어디선가 다시 꼬이고 엉켜 들었다. 그걸 보며 문득, 내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이었다. 갈등을 풀지 못한 채 덮어두고, 괜찮은 척하며 외면하는 내 모습. 상처를 마주하고 이유를 찾는 것보다 등을 돌리는 게 훨씬 더 편했다. 그래서 힘든 순간마다 ‘버티기’ 보다 ‘외면하기’를 선택했다. 지켜내는 일보다, 포기하는 일이 내게는 더 익숙했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질 줄 알았는데, 잘라낸 목도리처럼 미련은 늘 손끝에 남았다.


나는 자꾸만 힘을 주었다. 팽팽하게 잡고, 엉키지 않게. 실타래가 엉키지 않도록 꾸역꾸역 실을 팽팽하게 잡고 빨간 목도리를 떠올렸다. 하지만 나의 마음과 다르게 한 코가 쓱 빠져버릴 때도 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진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다. 잡고 있던 실마저 손에서 스르르 미끄러지고, 결국 다시 실을 풀어야 한다.


인생도 그렇다. 힘을 주고 붙잡으려 할수록 그 팽팽함 속에서 더 쉽게 지치고 풀려버린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조급하게 나를 몰아세울 때도 있다. 팽팽하게 잡고 버티지만 결국, 한 코가 빠지는 순간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나에 대한 실망이 밀려온다. 묵은 감정을 실과 함께 풀어내며 처음부터 시작하고 또 시작한다. 코를 새로 잡아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완벽한 목도리를 완성하겠다는 다짐은 변함없었다.


하지만 늘 실패로 돌아갔고 목도리는 결국 옷장 속 털뭉치로 남아 있었다. 덕분에 겨울은 언제나 추웠다. 손끝에서 풀리지 않고 엉켜버린 매듭은 덮어둔 기억들을 떠올리게 했고 그 시작을 망설이게 했다. 그러나 꼬불거리는 실뭉치를 바라보다 문득 깨달았다. 실처럼 인생도 언제든 다시 짜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몇 코가 빠진 목도리처럼 때로는 실수도 결국 내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번 겨울을 준비하며, 실타래를 감고, 바늘을 천천히 움직인다. 엉키고 꼬인 적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잘라내지 않고 풀어가기로 했다. 엉킨 실을 풀듯, 꼬였던 마음과 하나씩 풀어가며 피하고 싶었던 것들과 마주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다시 엉킬 수도 있고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또 몇 코가 빠져 커다란 구멍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다시 뜨지는 않을 것이다. 수 만개의 매듭 중에서 몇 코쯤 빠져도 괜찮다는 것을, 그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삶도 그렇다. 열 번쯤 넘어져도, 내가 나를 감싸줄 수 있다면 열 한번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어설픈 나의 삶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스스로 믿을 수 있다면 다시 한 걸음 내디딜 용기가 생긴다. 이번 겨울에는 왠지 목도리를 완성할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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