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여 잘있거라
공깃돌 다섯 개를 쥐고 있으면 인생의 사랑들을 손안에 모아놓은 것만 같다. 사랑도 공기놀이처럼 기대 속에서 공깃돌과 함께 위로 떠오르고 서로의 룰을 정한다. 공기 하나를 공중에 던지고, 바닥에 있는 공기 하나를 집은 후 다시 공중에 떠있는 공기를 받아야 한다. 사랑도 그렇게 서로의 감정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익숙해져 간다.
형형색색의 작은 플라스틱의 공깃돌 안에서 무게를 느껴보려 하지만 던지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사랑도 그렇다. 시작하기 전에 상대방이 나에 대한 마음이 가벼울지, 아니면 손끝을 누를 만큼 무거운지 알 수 없다.
처음엔 설렘으로 던졌던 공깃돌이 조심스럽고, 매 순간이 새롭다. 두찌기, 세찌 기를 지나며 우리는 감정을 공유하는 데 익숙해진다. 그의 리듬을 배우고, 내 감정을 조율하게 된다.
그리고 던지는 순간 깨닫는다. 공기처럼 가벼울 줄 알았던 감정이 손끝에서 떨어질 때 묵직하게 또는 가볍게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손바닥 위의 공깃돌이 점점 줄어들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튀어나가는 순간, 관계는 그 무게를 드러낸다.
첫 번째 돌은 티키타카가 잘 맞았다. 같이 있으면 늘 재밌었고 내기 힘들 때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왔다. 조건 없이 곁에 있어주는 그가 참 고마웠다. 투정을 부리고 돌을 던져도 돌아오고, 다시 던지면 또다시 돌아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는 멀리 날아가 닿을 수 없는 곳에 머물렀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이별의 순간이었다. 손끝에서 천천히 미끄러져 나가는 공깃돌처럼 아쉬운 마음에 울기도 했지만 붙잡지는 않았다.
친구처럼 편안했던 두 번째 돌, 오래된 시간만큼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주식으로 부자가 된 이야기, 공황장애가 있다는 고백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내 옷을 지적하며 새 옷을 사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골라준 옷은 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화려했지만 불편했고 인형이 된 기분이었다. 불편한 옷처럼 불편한 연인 관계도, 오래된 친구관계도 끝을 냈다.
세 번째 돌은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의 엄마도, 네이버도, 구글도 아니었지만 그는 업무에 필요한 걸 나에게 물었다. 우리는 사내 커플은 아니었는데 왜 나한테 물어봤을까? 그의 손에서 떨어진 건 그의 무지가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네 번째 돌은 내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어제 물어본 걸 오늘도 물어보았고, 어제 한 말을 처음 듣는 듯이 말했다. 평일에 만날 수 있었지만 주말에는 만날 수 없었다. 월요일이 되면 금요일에 했던 대화를 처음 하는 것처럼 시작해야 했다. 그의 눈은 늘 다른 곳을 향해 있었고, 그곳에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 나에게 처음 던지는 공깃돌이 아니었다고, 이미 한 번쯤 튕긴 감정이었다고 말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그에게는 이미 오래 잡고 있는 돌이 있었고, 나는 그 사이를 채우는 깍두기 돌이었다. 진심이었지만, 진심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는 사람에게 주고 있었다.
마지막 돌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일을 해야 했지만 그의 잦은 연락에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관심이라 여겼지만 그것이 숨 막히는 집착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나의 마음도 자연스럽게 접혔다.
그렇게 다섯 개의 돌을 내 손등 위에 올려놓았다. 던져서 잡아야 했지만 놓아버렸다. 잡고 싶지 않았다.
설렌 마음으로 던졌던 공깃돌은 결국엔 악몽으로 끝났다. 모든 것에 넌더리난 나는 다시는 누구도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한동안 공깃돌을 던지지 않게 된다. 그저 손끝에서 그 무게만을 느끼며 사랑을 던지고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봄바람이 불어왔다. 손바닥을 펴보니, 벚꽃 잎과 함께 새로운 공깃돌 하나가 놓여 있었다. 예전의 돌과 다를까? 그 무게를 알 수 없었다. 던질지 말지, 다시 시작할지 말지 망설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