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를

흩어진 기억, 멀어진 우리

by 북극곰

나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곱씹는 버릇이 있다. 안 좋은 습관인 줄 알면서도 시간과 감정이 과거에 매몰되어 현재를 낭비하곤 한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법이지만,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봐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비겁하게 자기 합리화를 하며 위로한다.


결정적인 그 사건을 빼고서라도 우리의 관계는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다시 만난 첫날부터 조금씩 삐그덕거렸다. 비행기가 연착되어 예상보다 늦은 만남으로 시작되었다. 방 천장은 물이 새고 있었고, 가려고 했던 식당은 문이 닫혀 있었다. 분위기 반전을 꾀하려 식사를 하며 노래를 틀었지만 스피커 고장으로 들을 수 없었다. 설상가상 국자 손잡이도 말썽을 부렸다. 사소한 일들이 겹치며 우리는 피로해졌고,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우리를 어긋나게 했다.


서로가 예민해져 있었던 걸까? 무심코 던진 말 하나가 공기를 바꿔 놓았다. 내가 좋다고 하면 언제든 웃으며 받아주던 너였는데 이제는 내가 좋다고 말하는 것마다 별로라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하나둘 쌓여가며 서로를 조심스럽게 대하게 되었다.


다시 만난 첫날에는 처음처럼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너의 말투, 행동, 내가 던진 농담에 웃으며 넘기던 너의 모습. 우리는 함께 케이크를 먹고, 맥주를 마시고, 배가 불러 배를 내밀며 배를 두드리던 날들, 우스운 몸짓으로 대화하며 웃던 순간들.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서로가 서로에게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았다.


'성형수술은 네가 아니잖아. 있는 그대로가 예뻐.' 그렇게 말해주던 너를 기억하며 우리의 관계를 돌릴 수 있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에 예전 사진을 꺼냈다. 촌스러운 모습을 보며 서로 놀리고 웃던 우리였는데 너는 몇 년 전 자신의 모습이 뚱뚱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나는 웃는 것조차 너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너의 모습을, 너는 스스로 부정하고 있었다.


함께 '살룻'을 외치며 배가 터질 때까지 마시던 맥주도, 디저트로 나눠 먹던 티라미수도 이제는 덩그러니 테이블 위에 남아 있었다. 맥주는 거품이 빠지고 미지근해졌고, 부드럽고 촉촉했던 티라미수는 어느덧 마르고 퍽퍽해졌다. 너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밤하늘만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는 많이 달라졌다.


늘 내 옆에 맞춰 발맞추어 걷던 너는 어느새 휴대폰을 보며 앞서가기 시작했고, 나는 네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너를 다시 만났을 때 시간여행을 하듯, 너에게 돌아왔다고 믿었다. 그때처럼 너와 내가 다시 마주 앉아 맥주도 마시고, 대화도 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시간은 조용히 그리고 분명하게 우리를 바꾸어 놓았고 우리는 더 이상 그때의 우리가 아니었다. 함께했던 기억은 서서히 흩어졌고 그때의 우리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남은 건 날카로워진 너와 그 앞에서 조용히 눈치를 보게 되는 나뿐이었다. 내가 좋아하던 너의 순수한 눈웃음은 날카롭게 식어가고 있었고, 나는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전하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너. 아니, 애초에 듣고 싶지 않았던 걸까? 혹시 처음부터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었던 걸까? 우리는 같은 언어로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 너의 말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같은 언어로 대화하면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꾸만 엇갈렸다.


우리의 관계는 처마 위를 살금살금 걷는 고양이처럼 위태로웠다. 균형을 잃지 않으려 애썼지만 결국, 금이 간 우리의 접시는 내가 던진 한 마디가 트리거가 되어 와장창 깨져버렸다. 내 실수였다. 더 조심했어야 했다. 너를 실망시켰고, 다 망쳤다. 숨 막히던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너를 잃고 싶지 않았다. 너와 함께 한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으니까. 그 시절의 나를, 그때의 우리를, 어떻게든 잃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용서를 구했지만 너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짧은 인사 한 마디로 나를 떠나보냈다. 이모티콘과 웃음으로 가득하던 너의 메시지는 이제는 무미건조한 작별 인사 하나만 남았을 뿐이다.


나는 이제 너의 삶에서 이젠 그저 스쳐 지나간 사람이 되었다.
잠시 머물렀다가 이내 사라지고 기억 속에서도 흐릿해져 가는 존재.

아니, 어쩌면 희뿌연 안개처럼 이미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생각에 속상하고, 슬프고, 미안하고, 후회가 남지만 가끔은 화가 나기도 한다.
마음이 아프지만,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걸 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너의 말이 이해가 된다. 우리가 함께 바라보던 것들, 그 소중함의 무게와 가치가 서로 달라졌다는 것을. 예전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너무 달라있었다. 말은 안 해도 느끼고 있었던 거였다. 그래서 이제는 서로 다르다는 걸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시기인 것 같다.


우리가 함께 별을 바라보며 걸어가던 날들, 그 별은 운석이 되어 가슴에 깊이 박혔다. 너는 한때 보름달처럼 나를 환하게 비췄지만, 이제는 서서히 기울어 초승달이 되어 나에게 등을 돌렸다. 나는 여전히 밤하늘을 바라보지만, 더 이상 우리를 밝히던 빛은 남아 있지 않다. 컴컴한 어둠만이 나의 앞을 비출 뿐이었다.


앞은 보이지 않지만 나는, 네가 내게 남겨준 그 소중했던 기억들로 오늘을 살아간다.

지나간 것들을 붙잡지는 않지만, 한때 나를 웃게 했던 순간들은 고이 간직한 채 살아가려 한다.

그리고 이제는 멀리서 너의 행복을 조용히 바랄 뿐이다.


Ad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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