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풀리지 않는 인생공식
어렸을 땐, 세상의 모든 문제가 수학처럼 풀릴 줄 알았다. 공식 하나 외우면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연습을 반복하면 언젠가는 자신 있게 풀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시험지에 마주한 문제들은 늘 낯설고 예측할 수 없었다. 익힌 공식을 억지로 끼워 맞춰 보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수학을 놓았고, 좋은 성적도 받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처음 알게 된 것 같다. 세상에는 공식이 통하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성인이 된 지금 공식이 통하지 않는 문제들을 매일 마주한다.
재취업을 준비하며 얼마 전 면접을 봤다. 서류 합격 통보를 받고 나름 열심히 준비했다. 예상질문을 뽑고, 휴대폰 녹음기를 켜고 1분 자기소개를 연습하며 긴장된 마음을 다잡으며 그동안의 경험과 역량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면접 당일 아침,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평소에 하지 않던 화장도 했다. 발이 아팠지만 구두를 신고 미래의 직장이 될지도 모르는 곳으로 아침 일찍 출발했다. 카페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며 마지막 스피치를 연습한 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면접장에 들어섰다.
20분 정도 기다린 끝에 면접이 시작되었다. 면접관은 3명, 면접자도 3명이었다. 총 세 개의 질문을 받았고 10분 정도의 시간동안 면접이 진행됐다. 짧은 시간동안 나를 보여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첫인상은 7초 이내에 결정된다고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나를 온전히 표현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면접은 끝이 났다.
또각또각, 복도를 지나 면접대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부족했을까?’, ‘더 나은 답을 했어야 했을까?’ 답이 없는 질문은 오래도록 마음을 흔들었고 어릴 때 엄마한테 맞아가면서 풀었던 구몬학습지가 생각났다.
그때처럼, 나는 또 내 안의 미지수를 되짚었다. 어렸을 때는 공식만 알면 모든 문제가 풀릴 줄 알았다. 그런데 살아보니 인생은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 문제들의 연속이었다. 어떤 문제는 공식 자체가 없고, 어떤 문제는 운 좋게 찍은 답이 맞기도 하며, 어떤 문제는 아예 답이 존재하지 않거나 여럿 존재하기도 했다. 취업이라는 문제, 인간관계라는 함수, 꿈과 현실 사이의 미분. 변수는 끊임없이 바뀌었다.
이 면접에서 나는 외우지 못한 공식을 적용하지 못해 모든 것이 비어있는 백지처럼 느껴졌다. 빵점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런 어려운 순간들 속에서, 수학의 진리가 떠올랐다. 틀리면, 다시 풀면 된다는 것. 그것은 수학이 나에게 남겨준 유일한 위안이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계산이 틀렸다고, 가정이 잘못됐다고,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모든 걸 지워버릴 필요는 없다. 그냥 그렇게 지나온 사건들을 통과하며 우리는 단단해진다. 실패한 자리에서도 나를 붙잡을 수 있는 힘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언젠가 공식과 계산만으로는 풀 수 없는 응용문제가 내 앞에 덜컥 찾아와 혼란스러워지고 불안해질 때도 있다. 마음을 써야 비로소 풀리는 문제들. 정해진 답 없이 고민하고, 조용히 지워가며 다시 쓰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그래서, 나는 또 푼다. 틀리면 다시 풀고, 지우고 다시 쓰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비록 빨간펜으로 정답을 체크해 줄 사람은 없지만, 지금 내가 살아내고 있는 이 하루가 정답을 향한 가장 진실된 풀이라는 것을 깨닫고 오늘도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