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스무 살의 꿈, 마흔 살의 현실

by 북극곰

스무 살 무렵, 내 앞날은 탄탄대로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학력에 대한 열등감조차도 나를 더 나아지게 할 가능성처럼 보였다. 그 시절 내 세상은 두 발로 디뎌도 충분할 만큼 넓은 자리가 있었고, 나는 그 공간 안에서 서툴지만 천천히 세상을 향 나아갔다.


서른을 넘기면서 그 너른 자리는 하나둘 접혀갔다. 기회는 차례로 정리되었고, 선택지는 점점 줄어들었다. 두 발로 여전히 땅을 딛고 있었지만 마음껏 움직일 수 없었다. 직업, 결혼, 가정이라는 이름의 현실이 벽처럼 다가와 내 앞을 막아 마음껏 움직일 수 없었다.


마흔이 된 지금, 나는 외발로 겨우 중심을 잡고 서 있다. 위에서는 누르고 아래서는 치고 올라오는 애매한 위치. 좁아진 신문지 위에서, 휘청이는 몸을 겨우 지탱한 채 진기명기의 외줄 타기를 이어가며 한 손으론 무언가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괜찮은 척 웃고있다. 스무 살 때부터 방황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말하는 자리를 잡았더라면 지금보다 덜 위태롭고 더 행복했을까? 그때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 했던 선택은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경험과 기억이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니까.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니 나는 종이신문 속 사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펴지긴 하지만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스포츠면과 연예 기사 속에 묻혀 늘 구석에 놓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을 끝까지 읽으려 하지 않는다. 예전엔 나도 목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세상에 닿고 싶었지만 나를 향해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부터 나는 차가운 겨울날 붕어빵을 감싸는 종이가 되었고, 다른 날엔 꽃을 감싸 안으며 향기를 머금었다. 누구에게도 반문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또 다른 용도를 맡으며 조용히 쓰이고, 바람에 날렸다.


그러다 그마저도 점점 녹록지 않은 상황이 되어갔다. 손끝에 닿은 종이신문 대신 작은 화면 속에서 빠르게 흘러가는 정보만이 남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종이신문을 펴지 않는다. 손바닥보다 작은 액정 속에서 뉴스를 훑고, 화려한 이미지와 자극적인 제목 속에서 빠르게 정보를 소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종로3가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던 중, 가판에서 천 원을 주고 신문을 산 그를 만났다. 그는 신문을 펼치며 혼잣말을 했다.


"사는 게 쉽지 않네. 신문지 게임 같다.... 나이가 들수록 설 자리가 좁아지고, 외줄 위에 서 있는 것처럼 휘청거리는 걸 보니.. "


그의 말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묵직한 공감이 일었다. 그의 말은 마치 내가 느끼던 감정처럼, 내 안에 있던 불안과 외로움을 그대로 꺼내놓은 듯했다.


'저 사람도 와 같은 위태로운 외줄 위에 서 있구나.' 세상의 무게에 균형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어쩐지 위로를 받았다. 내가 혼자만 얇고 흔들리는 외줄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옆자리에 앉은 그도, 또 다른 누군가도 그렇게 불안정한 외줄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한참 신문을 보던 그는 신도림역에서 내렸다. 1호선과 2호선의 환승역, 수많은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외줄 타기가 조금 덜 흔들리고 더 이상 휘청이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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