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과 썰물 사이, 후회의 파도
“만약에…”
이 말은 현실을 외면하며 스스로를 보호하는 비겁한 변명이 되기도 하고 이미 지나가버린 순간을 붙잡고 되새기는 가장 슬픈 후회가 되기도 한다.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술을 마시면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린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그때를.
바쁘게 하루를 살아가며 흐릿한 기억 속에 묻어둔 채 지냈다. 하지만 술 한 모금이 식도를 타고 지나가는 순간, 맥주의 탄산처럼 잊었던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팡팡 터지며 선명해진다. 알코올이 과거를 조명하고, 나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에 빠진다.
술은 감정의 둑을 무너뜨린다. 억눌러두었던 말과 기억들이, 마치 밀물처럼 밀려든다. 잊은 줄 알았던 후회들이 술 한 모금에 되살아나고, 마음속 해안가를 덮친다. 처음에는 조용히 밀려오는 파도처럼, 단순히 기분이 가라앉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술이 깊어질수록, 그 평온은 깨지고, 내가 놓친 말들,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이 떠오르며 나를 괴롭힌다.
부모님께 했던 무심코 내뱉은 말들이 다시 살아난다. 그날의 공기, 그때의 표정과 말투가 떠오르며, 나도 모르게 목이 메어온다. 왜 그때 더 따뜻하게 말하지 않았을까. 나는 왜 그들을 다 이해하려 하지 않았을까. 그 말들, 그 작은 무심함이 밀물처럼 내 안에 차오르고 후회의 파도로 마음을 휩쓸어간다.
후회의 생각은 꼬리를 물고 몇 년 전 헤어진 연인의 뒷모습으로 향한다. 그 순간 그의 눈빛과 그가 했던 말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의 한마디에 흔들렸고, 그의 표정 하나에 내 세상이 요동쳤다. 그때는 그게 사랑이라 믿었지만 되돌아보면 그 모든 감정이 필요 이상으로 컸다는 걸 알게 되었다. 되돌아보면,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고, 그는 너무 많은 것을 감당하려 했다. 그 끝이 다가올 줄 알았으면서도, 우리는 애써 외면했다. 시간이 지나서야 그 끝이 맞았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술 한 모금과 함께, 그 기억은 다시 영화 속 파노라마처럼 밀려왔다.
부모님께 상처 준 말, 그리고 연인과의 끝을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이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 모든 갈등과 후회는 결국,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든 과정이었음을 깨닫는다.
놓쳐버린 사람들, 보내버린 말들, 그 모든 것들이 물결처럼 밀려와 나를 잠기게 만든다. 그 모든 것이 모래알처럼 내 발가락 사이사이에 하나씩, 천천히, 조금씩 쌓여 간다. 처음엔 그저 거슬리던 모래가, 점차 발을 무겁게 하고, 내 발목을 감싸며, 내 마음을 억제하는 무게로 변한다. 그리고 미안함과 후회는 파도처럼 나에게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처음엔 잔잔하게 밀려오지만, 어느새 파도는 거세지고, 그 감정은 내 마음의 바다를 휘젓기 시작한다. 파도는 나를 끊임없이 뒤흔들고, 물보라처럼 나를 덮치기 시작한다.
그렇게 나는 휘몰아치는 감정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결국, 술에 취해 잠이 든다.
다음날, 두통과 함께 술이 깨면서, 감정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머리는 무겁고 속은 울렁거린다. 공허한 속을 움켜쥐고 누운 채, 어제의 기억들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술에 취해 요동쳤던 마음도 서서히 가라앉고 아침 햇살이 비추듯, 그때의 아픈 기억들은 흐릿하게 휘발된다.
밀려왔던 감정의 파도는 갯벌 속으로 흘러들고 조용히 흩어져 사라진다. 갯벌은 모든 것을 삼키듯 내 안의 불안과 후회도 진흙 속으로 묻혀 간다. 발이 서서히 진흙 속으로 빠져들 듯, 감정도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 점차 사라진다. 어느 순간, 더 이상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텁텁하다. 어제의 후회가 남아 있을 것 같지만, 숙취에 눌려 기억마저 무뎌진다.
그 자리에 남은 건 고요함과 깊은 침묵뿐. 나는 다시 일상 속으로 돌아간다. 잠시 밀려왔던 감정들은 기억 속에 잠겨 잊히고, 오늘은 다시 반복되는 하루 속으로 흘러간다.
IF, 가장 비겁한 변명이자 가장 슬픈 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