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잃고도 살아지는 하루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휴대폰을 확인하는 습관. 늘 모닝콜처럼 날 짧게 깨우는 '굿모닝' 인사 대신 어제 읽지 않은 광고 메시지만이 화면을 채우고 있다. 엄지손가락으로 무심히 화면을 내리다 문득 깨닫는다. 우리는 헤어졌다. 어젯밤 너와의 마지막 메시지를 다시 열어본다. 나의 마지막 인사, 짧은 '안녕' 옆에 여전히 남아있는 숫자 1. 사라지지 않는 그 작은 숫자가 이제는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거리처럼 느껴진다.
씁쓸한 마음이 한편에 남아있지만,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늘은 평소와 같았고, 버스는 정시에 도착했고, 까끌거리던 아침밥도 잘 넘어갔다. Ref 이별공식 노래 가사처럼 이별장면에선 항상 비가 온다고 했지만 너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퍼붓는 비도 없었고 누군가 알아채 줄 만큼의 슬픔도 없었다. 마치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처럼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슬픔이 나를 삼킬 줄 알았는데,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마치 내 감정에 소리가 꺼져버린 듯, 고요했다.
많은 이별을 겪어봐서일까. 사람이 떠나는 걸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서일까. 네가 떠나갔음에도 덤덤하다는 사실이 더 아팠다. 예전 같았으면 밤새 울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몇 날 며칠을 먹지도 못하고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저 이별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살아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렇게 덜 아픈 대신 덜 살아내는 것일까. 아니면 이 무감각이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일까. 모르겠다. 다만, 이별이 익숙해질수록 마음 한편이 조금씩 닳아가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렇게 너와 정말 끝났다고 생각했던 어느 밤. 퇴근길, 지친 몸을 버스 의자에 묻고 이어폰을 꽂았다.
늘 듣던 플레이리스트를 무심히 눌렀고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우리가 싸우면 화해의 신호처럼 같이 듣던 노래였다. 말로 풀지 못한 감정을 대신해 주던 멜로디,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주게 했던 노랫말.
“내 곁에 있어줘.. 내게 머물러줘…”
우리가 늘 한쪽씩 이어폰을 나눠 끼고 들었던 정준일의 노래였다. 절절한 그의 목소리가 오래된 상처를 건드리는 불쏘시개처럼 잊은 줄 알았던 너와의 기억들이 선명하게 되살려냈다. 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네온사인들 사이로 너와 나란히 버스 뒷좌석에 앉아 있던 그날이 겹쳐 보였다. 반 뼘쯤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살랑거리는 바람과 이어폰 너머로 들리던 너의 숨소리, 그리고 노래가 끝나면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순간들. 우리가 싸우고 화해했던 그 모든 장면까지.
그때의 우리에게는 음악 한 곡이면 충분했다. 누군가 노래를 틀고 무심한 듯 이어폰 한쪽을 내밀면 굳어있던 표정이 조금씩 풀어졌고 서로의 손끝이 조심스럽게 닿았다. 그렇게 우리는 늘 화해했다. 노래 한곡이면 충분했던 우리였는데, 이제는 그 노래 더 이상 우리를 이어주지 못한다. 내 귀에는 이어폰 두 개가 모두 꽂혀있고 아무도 나에게 화해를 건네지 않는다.
그날의 음악으로 너에게 다시 가까워졌지만, 아무리 같은 노래를 반복해도 너에게 닿지 않는다. 그리고 참았던 그리움이 눈물과 함께 폭발하듯 쏟아졌다. 나는 괜찮은 게 아니라 그리움을 다루는 데 익숙해진 것이었고, 너와의 추억을 조금씩 지워가는 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를 잊은 줄 알았다. 견딜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준일 노래가 흐르자 마음 깊숙한 곳에 웅크려 있던 너의 이름이 울컥, 하고 터져 나왔다. 너와 함께 걷던 거리, 우리가 자주 가던 카페, 시답지 않은 농담과 싸움마저도 모두 거친 표면이 되어 사포로 내 마음을 마구 문질렀다. 그리고 그렇게 사포로 거칠었던 감정을 부드럽게 다듬어 가며 너를 마음속에서 보내기로 했다. 너와의 추억을 마주하고 끝까지 아파하면서. 다시 붙잡을 수 없다는 걸, 다시 이어질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니까.
잠깐 멈췄던 마음에 느릿하게 사포질을 하기 시작했다. 네가 떠난 모나고 울퉁불퉁한 자리를 부드럽게 다듬어 보려 한다. 그저 아프지 않도록, 더 이상 상처가 나지 않도록. 어쩌면 네가 떠난 자리가 완벽히 매끄럽게 다듬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어쩌면 그냥 그대로 두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너를 잃고도 살아지는 하루가 나를 잃고 사라지지 않도록 오늘도 사포질을 하지만 그 하루 속 나는 점점 사라지고 그리움은 여전히 남아있다.
오늘도 네가 없이도 하루는 살아지지만, 네가 없는 하루가 사라진다.
너를 잃고도 살아지는 하루가, 나를 잃고 사라지지 않는 내일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