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서 배움으로
나는 수영을 못한다. 생존 수영을 배우고자 센터에 등록해 물에 뜨는 법과 몸을 맡기는 법을 배운 적이 있지만 막상 물속에 들어가면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고 강사님도 나도 포기하고 말았다. 물은 나를 초대하지 않는 얇은 막으로 가로막힌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졌고 한동안 물과 멀어져 지냈다. 수영에 대한 기억도, 그날의 감각도 점점 희미해졌다.
기억의 희미 해질 때쯤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가 심했던 시기였다. 모든 걸 멈추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피곤한 사람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아무 생각 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싶어 혼자 사이판 여행의 꽃이라는 마나가하섬 에메랄드빛 바다에 도착했다. '스노클링은 수영을 못해도 괜찮아. 초등학생도 다 하는 걸?' 그 말을 믿고 겁도 없이 스노클링에 도전했다. 장비를 착용하고 맑고 투명한 바닷물 사이로 물고기가 헤엄치는 게 보이는 게 신기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호기심에 이끌려 점점 깊은 곳으로 향하다 그만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지고 말았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지 않았더라면 금방이라도 가라앉았을 것만 같았던 기억. 온몸이 저릿했고 삶의 끝자락에서 짜디짠 바닷물을 한 바가지 마시고서야 겨우 물밖으로 나왔다. 겨우 물밖으로 나와 모래사장에 털썩 주저앉았다.
물은 그 이후로 두려움의 얼굴로 남았다. 그때만큼은 '겁이 난다'는 말도 억지로 부정할 수 없었다. 그날, 차가운 맥주를 들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내가 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했는지를 떠올려보았다.
나는 늘 튜브 같은 사람을 좋아했다. 나를 가볍게 띄워주고 칭찬해 주던 사람들. 나를 억지로 끌고 가지 않고 다만 내 옆에서 가라앉지 않게 붙잡아주는 사람. 그들은 조용히, 다그치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곁에 남았다. 그 말 한마디에 가슴이 놓였고, 비로소 나도 수면 위에 잠깐 떠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큰 파도가 몰아치기라도 하면 그들은 나에게 등을 돌려 저 멀리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곤 했다.
한 번의 성장통을 겪고 난 후 나는 현실적이고 묵직한 산소통 같은 사람을 찾게 됐다. 그들과 함께라면 어두운 바닥을 디뎌볼 용기가 생겼고, 차분히 가라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관계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의욕이 넘쳤던 사람들을 따라가기엔 내 산소통의 산소는 부족했고 무거웠다. 산소는 무한하지 않았고,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숨이 차올라 허겁지겁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지금은, 오리발 같은 사람이 좋다. 억지로 나를 떠밀지도, 띄워주지도 않으면서 나만의 물살을 가를 수 있게 해주는 사람. 혼자서도 나아갈 수도 있고, 때로는 함께 물살을 가르며 외롭지 않게 곁에 있어주는 관계. 어깨를 맞대지 않아도 서로의 리듬을 존중하며 나아가는 사이. 그들과 함께일 때 비로소 나도 온전히 움직일 수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누군가에게 의지해왔다. 툭 치면 터질 듯 가벼운 튜브 같은 사람에게, 숨을 참아가며 매달렸던 산소통 같은 사람에게, 그리고 이제는, 내 몸을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오리발 같은 사람에게도. 그들 덕분에 잠시라도 물 위에 떠 있었고, 한때는 깊은 바닥을 디뎌볼 용기도 냈다.
이제는 물이 더 이상 나를 가로막는 장벽이 아니다. 내가 허우적대던 시간도, 깊이 가라앉았던 순간도 모두 지나왔다. 물과 함께하는 법을 배우면서, 나는 점점 더 자연스럽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떠밀리지도, 붙잡히지도 않는다. 오리발 같은 사람들과 함께, 나만의 물살을 가르며 나아간다. 거센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고, 조용한 물결 속에서도 균형을 찾는다. 인생이라는 망망대해 속에서, 나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다. 언젠가 다시 깊은 물속을 마주하게 된다면, 나는 겁에 질려 몸을 움츠리기보다는 물결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나만의 움직임을 만들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