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맞추려 하면 퍽퍽해진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겨울 내내 방심한 탓인지 살이 붙었다. 그래서 운동과 함께 식단을 시작했다. 하루 한 끼 정도는 가볍게, 닭가슴살로 단백질을 챙기고 있다. 진공포장된 닭가슴살을 전자레인지 2분 정도 돌리면 금세 건강한 한 끼 식사가 완성된다.
처음엔 그냥 ‘몸에 좋으니까’라는 이유로 아무 생각 없이 먹었는데 어느 날, 포장을 뜯고 손으로 닭가슴살을. 금육 섬유가 일정한 방향으로 정렬되어 있는 닭가슴살이 낯설게 느껴졌다. 겉은 상당히 부드러운데 속은 분명한 결이 있었다. 가느다란 섬유질의 흐름. 결대로 찢으면 섬유질이 곱게 풀리고, 식감도 부드러워진다. 하지만 결을 거스르면 조각이 뭉개지고, 퍽퍽해진다.
생각해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건강을 위해 먹는 음식인데, 작은 방향 하나만 달라져도 경험이 완전히 달라진다. 닭가슴살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질서를 품고 있었다. 단순한 식감 차이라고 생각했는데 계속해서 닭가슴살을 손으로 찢다 보니, 그 작은 차이가 만들어내는 결과가 점점 커 보이기 시작했다.
삶이 그렇다. 억지로 방향을 거스르면 불편해진다. 무언가를 원한다고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흐름을 따를 때 더 편안하고 좋은 결과가 나온다. 닭가슴살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삶을 조금 더 부드럽게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과는 마주 앉아 있기만 해도 마음이 편하다. 말이 없어도, 그저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서로가 억지로 이야기를 꺼내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어색한 공기를 깨기 위해 주제를 고르지 않아도 된다. 그 존재만으로 충분한 위로가 되어준다. 우리는 이미 같은 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결이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쉽게 피곤해진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싶지만, 대화가 늘 삐걱거린다. 좋은 의도로 다가갔는데도, 마음은 자꾸만 다친다. 나는 한동안 사람들을 내 방식대로만 이해하려 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방향으로만 다가갔다. 그렇게 망가진 조각들을 붙들고, 왜 이렇게 관계가 퍽퍽하냐고 속상해했던 적도 있다.
닭가슴살 진공 포장지를 뜯으며 알게 됐다. 사람마다 고유한 결이 있다는 것을. 그 결을 먼저 읽어내고, 그 방향을 따라 다가가야만 비로소 마음이 전해진다는 것을. 결이 맞는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나와 연결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은 곧 관계를 잇는 선이 된다.
한결같은 숨결처럼 조용히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 그 사람은 고결함을 지닌다. 쉽게 닿지 않지만, 한 번 다다르면 오래도록 곁을 내어주는 사람.
결대로 살아가는 것이 삶을 좀 더 부드럽고 건강하게 살아내는 방법일지 모른다. 하지만 때로는 닭가슴살을 결 반대로 뜯듯, 결을 거스르는 순간도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를 대비해 소스도 준비해 두기로 한다. 인생에도 가끔은 소스가 필요하니까. 소스 한 스푼의 여유가 오늘을 조금 더 부드럽게 넘기도록 만들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