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부리

마음의 흙을 털다

by 북극곰

체력을 기르고 살을 빼려고 동네 뒷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나의 작은 일상이자 해방구가 되었다. 험준한 산은 아니지만, 한 시간 반 남짓 오르내리는 시간 동안 땀을 흘리고 숨을 고르면 개운하고 몸의 감각을 되찾는 기분까지 들며 작지만 확실한 기분 전환을 선사한다.


유난히 하늘이 파랗게 빛나던 날이었다. 미세먼지 한점 없는 볕 좋은 5월의 싱그러움과 아카시아향에 취해 고개를 젖혔다. 눈부신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운과 그 아래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에 시선을 빼앗긴 순간, 돌부리는 아무런 예고 없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쿵, 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야!”


짧은 비명과 함께 흙바닥에 엎어졌다. 아프다기보다 창피한 감정이 밀려왔다. 혹시라도 지나가는 등산객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을까 봐 후다닥 몸을 일으켜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걸음을 옮겼다. 넘어졌다는 사실이, 그리고 넘어지는 내 모습이 왠지 모르게 창피하고 민망했다.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는데 무릎을 보니 피가 굳은 빨간딱지가 선명하게 앉아 있었다. 살짝 부어오른 무릎은 그제야 아픔을 알려왔다. 쓰린 통증만큼이나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몸에 난 상처는 눈으로 확인되고 손으로 만져지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어디서 확인하고 어떻게 어루만져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도 돌부리가 있다. 형체도 없고 눈에 띄지 않아 더욱 예측하기 어렵고 아무리 조심해도 피할 수가 없다. 나는 종종 그런 마음의 돌부리에 걸려 속절없이 넘어진다. 일어나야 하는데 힘이 없어 넘어진 상태로 옆으로 가만히 있을 뿐이다. 누워서 본 세상은 거꾸로 그리고 너무 빨리 돌아간다. 발버둥 쳐도 일어날 수 없는 무기력함이 온몸을 감싼다.


주변은 분주하게 돌아가는데, 나는 그 속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누군가 손을 내밀어도 그 손을 잡을 힘조차 없고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대신해 눈물만 조용히 흘린다. 하지만 언젠가 이 무거운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마음에 묻은 흙을 하나씩 조심스레 털어내며, 조용히 다시 일어설 날이 올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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