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없는 번지점프

by 북극곰

나는 회복탄력성이 좋은 스프링 같다고 믿었다. 아무리 눌려도 언제든지 다시 튀어 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불만족을 자기만족으로 바꾸기 위해, 나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낯선 환경 속에 던져져도, 처음 해보는 일 앞에 서 있어도, 스스로에게 “괜찮아, 해보자”라고 말하며 한 발을 내디뎠다.


기존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도, 작은 실패에 부딪혔을 때도, 면접에서 고배를 마셨을 때도 금세 훌훌 털고 일어설 수 있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넘어짐이 아니라, 멈춰 서 있는 순간이었다. 나는 실패보다 정체를 더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스프링은 탄성이 없어지고, 나는 더 이상 튀어 오르지 않았다. 눌리면 눌린 채로, 구겨지면 구겨진 채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예전에는 작은 실패에도 금세 다시 일어섰지만, 이제는 그 실패가 나를 오래 붙잡는다. 그래서 나나는 줄 없이 뛰어내리는 번지점프 같다. 돌아올 지점도, 내 발을 받쳐줄 땅도 없는데 나는 허공에 몸을 맡긴 채 추락하고 있다.


세상은 나를 스프링처럼 눌러대고, 그 압력에 나는 자꾸 바닥으로 밀려난다. 스프링은 눌린 만큼 다시 튀어 오른다지만, 나는 그 반동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채 늘 주저앉는다. 눌릴수록 더 깊이 파묻히는 것만 같아, 오히려 복원력이 아니라 무게감만 선명하다. 더 이상 가볍게 튀어 오르지 못한 채, 눌리면 눌린 대로 구겨지면 구겨진 대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8개월간의 구직 활동은 그 허공을 더 깊고, 더 길게 만들었다. 면접에서는 번번이 고배를 마셨고, 가뜩이나 부족한 자신감은 점점 줄어들어 목소리마저 작아졌다.

옆 사람은 당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상영하는데, 나는 음소거된 흑백 무성영화 속 인물처럼, 대사도 없이 조명도 없이 흐릿한 표정만으로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예전의 나는 안정적인 것을 포기하고 도전을 택하곤 했지만 지금의 나는 안정적인 것을 좇아 살아간다. 그리고 돈이라는 현실 앞에서, 자꾸만 나 자신과 타협하게 된다. 그 타협이 처음엔 부끄러웠다. 마치 꿈을 포기한 것 같았고, 예전의 나를 배신하는 것 같다.


나는 오늘도 추락 중이다. 어딘가로 끝없이 곤두박질치는 기분. 잡히지 않는 줄에 매달린 채 허공에서 흔들리다 보면, 가끔은 숨이 막힌다. 모두가 위로 솟구쳐 오르는 순간에도, 나는 홀로 아래로만 떨어지는 듯하다.


번지점프는 그 순간의 감각이다. 발끝에서 시작된 떨림이 온몸으로 퍼지고 바람을 가른다. 떨어질 때 세상은 잠시 멈추고 자유와 두려움이 뒤섞여 묘한 해방감을 준다. 하지만 떨어지는 동안 내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묻는다.


'과연 나는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을까?'


사는 일도 그렇다. 위로 오르려는 힘보다 아래로 끌어내리는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진다. 하루하루 버티는 일조차 번지점프의 추락처럼 아슬아슬하다. 나는 그래서 더 쉽게 지치고, 자주 바닥을 느낀다.


오늘도 그 바닥에 그대로 누워 있다. 번지점프에서 착지할 때처럼 어딘가에 에어매트가 깔려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 나를 위해 그 에어매트를 펼쳐준다면 이 추락도 조금은 덜 아플 테니까.


아니, 어쩌면 그 에어매트는 내가 스스로 깔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받아들이고 기다려주는 연습.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회복탄력성일지도 모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발 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