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팥빵

by 북극곰

“간절한 인정의 갈망은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야 비로소 온전해지고 싶어 하는 마음, 그것은 결국 내가 스스로에게서 찾지 못한 가치를 타인에게서 구하려는 조금은 슬픈 몸짓인지도 모른다.”


칭찬 한마디, 따뜻한 눈빛 하나에 마음이 들뜨고, 또 너무 쉽게 무너지는 나의 습관을 바꾸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보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고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고, 지치고, 때로는 나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 습관을 바꾸기 위해 나는 나를 다시 들여다봐야 했다. 왜 나는 그렇게 흔들리는지 왜 나는 그렇게 인정에 목말라 있는지를.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릴 적부터 쌓여온 비교와 무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서운함들이 있었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공부, 직장, 외모 등 비교를 당하면서 내 안에는 뿌리 뽑지 못하는 열등감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것들을 하나씩 꺼내어 직면하고, 이해하고, 조금씩 내려놓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도 완전히 바뀌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제는 내가 누구인지 어떤 감정이 나를 흔들고 있는지를 조금은 더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10여 년 전, 친척오빠의 결혼식이었다. 나는 전문대를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이었고 언니는 대학원생이었다. 큰아버지는 언니를 보자마자 언니의 양손을 붙잡고 "우리 대학원생"이라며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분명 언니 뒤에 내가 있었는데 큰아버지는 언니만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셨다. 5시간 버스를 타고 목포에 도착했지만 나는 투명인간이 되었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어릴 적 대문 앞에서 친척오빠들을 기다렸던 기억이 겹쳐져 눈물이 고였다. 그때 오빠들은 기다리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언니 이름을 부르며 대문 안으로 들어갔었다. 인천에서 목포까지 내려갔던 나는 가슴에 상처를 하나 입고 인천으로 올라와야만 했다.


몇 년 후, 나는 이직을 하였고 언니는 대기업에 취직을 했다. 하루는 친척 어른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참석해야만 했다. 언니와 내가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친척 어른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우리를 발견하신 아버지는 그분께 우리를 소개하셨다.


"얘가 큰 딸, 얘가 작은 딸이에요."


"안녕하세요." 언니와 나는 동시에 인사를 드렸다.


"그래, 네가 OO 다닌다며?"


그 말과 함께 그분의 눈은 반짝였고 입가에는 윗니 12개가 드러날 만큼 환한 미소를 지으셨다. 한참 동안 언니와 인사를 나누었던 그분은 나에게 물으셨다.


"너는 뭐 하니?"

"저는 유학원에서 유학상담을 해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분은 악수하던 내 손을 놓으셨고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셨다. 같은 두 눈동자인데 한 번은 총기가 어린 따뜻함이, 또 한 번은 냉랭함과 무시가 담겨있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투명해졌다. 말없이 서운함을 삼켰고 그 감정은 내 안에서 형태를 바꾸었다. 말하지 못한 감정은 색이 되어 내 마음을 서서히 잠식했다. 열등감은 말없이 스며들었다. 소리 없이, 흔적 없이, 하지만 분명히 내 안을 잠식해 갔다. 처음엔 작은 그림자 같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그림자는 짙어졌고 본연의 색은 점점 사라졌다. 그 자리에 짙고 무거운 색이 자리를 잡았다. 말하지 못한 서운함, 비교당했던 기억, 무시받았던 순간들이 검붉은 물감처럼 번져나갔다.


백앙금 같았던 내 마음이 상처와 열등감으로 검고 그리고 붉게 곪아 결국 단팥이 되어있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누구에게 말을 할 수도, 울 수도 없었다. 아픈 기억은 새살이 나지 않는 검붉은 딱지가 되어 굳었다. 그 딱지는 아물지 않아 누군가 건드릴 때마다 붉은 피처럼, 눈물처럼 흘러내린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는 타인의 시선, 타인의 기대를 기대하지도, 충족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특히 친척들과 마주할 때면 마음의 문을 단단히 닫았다. 그들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가 내 안의 딱지를 건드릴까 봐 수도꼭지처럼 마음 한 방울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꽉 잠갔다.


그건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였지만 동시에 나를 고립시키는 벽이 되는 부작용도 있었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으려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게 되었다. 칭찬에도 무덤덤해지고, 비난에도 무감각해지면서 내 감정의 결이 희미해졌다.


이제 나는 무덤덤하다. 흔들리지 않고, 기대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나를 지키며 살아간다. 어쩌면 철이 든 것일지도 모르지만 가끔은 상처를 피하려다 내 안에 있던 따뜻함까지 함께 흘려보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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