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기류

by 북극곰

2002년 6월,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열렸던 한일 월드컵. 온 나라가 축구로 인해 열기가 상당히 뜨거웠던 한 달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TV에서 스페인과 아일랜드의 경기를 보았다.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속에서 녹색 유니폼을 입은 아일랜드 선수들은 전장에 나서는 군인들처럼 어깨를 맞대고 한 선수씩 앞으로 나아가 골대를 향해 힘차게 공을 찼지만 접전 끝에 아일랜드는 접전 끝에 스페인에게 패하며 16강 진출이 좌절되었었다. 선수들은 좌절하며 고개를 떨구었고, 몇몇 선수들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때 화면에 잡힌 마이클 매카시 감독이 웃으며 선수들을 다독이던 장면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아일랜드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단순했지만 열일곱 살의 나에게 아일랜드는 분명한 꿈이었다.



그 후로 아일랜드에 대해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도서관에서 정보를 찾아봤지만 그때만 해도 정보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직접 가서, 내 눈으로 보고 느껴보기로 결심했다.


첫 회사를 그만두고 그다음 해인 2007년 아일랜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짧은 여행 동안 자연과 친절한 사람들, 기네스의 진한 향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또 한 번 다짐했다. 언젠가 꼭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비행기 안에서 나는 꿈을 다시 접어 마음 깊숙이 넣어두었다. 스물한 살부터는 청춘을 조금씩 저축하며 그 꿈을 지켜왔고, 학자금 대출까지 모두 갚고 나서야 비로소 오래 묵혀두었던 꿈을 꺼내 들 수 있었다.


스물다섯, 마침내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아일랜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설렘도 잠시, 이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기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금 비행기가 난기류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승객분들은 모두 자리로 돌아가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승무원의 차분한 기내 방송이 들렸다. 사람들은 웅성거렸지만 곧 조용해졌고, 나 역시 허리끈을 조심스레 조여 맸다. 창밖은 하얗게 흐려 있었고, 그 속에서 나는 그저 조용히 도착만을 바랐다. 비행기는 멈추지 않았다. 불안정한 기류 속에서도 정해진 항로를 따라 목적지를 향해 묵묵하게 나아갈 뿐이었다.


가슴속에 오래 접어두었던 꿈을 꺼내 들고 청춘과 맞바꾼 돈과 시간을 담아 비행기를 타고 아일랜드 골웨이에 도착했다. 펼쳐진 초록빛 들판과 양 떼를 바라보며 꿈을 이뤘다는 사실에 설렘과 성취감을 느꼈다. 세상은 낯설고 모든 것이 새로웠었지만 동시에 내가 원하는 곳에 있다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다.


그로부터 15년이 흘렀다. 마흔 살의 나는 인생이라는 비행기에 앉아 또 다른 난기류를 지나고 있다. 이번에는 누군가가 “안전벨트를 메세요.”라고 알려주지 않는다. 누가 얼마나 흔들릴지, 어디에 착석해야 할지도 스스로 판단해야 해서 무섭기도 하고 조금 쓸쓸하기도 하다.


비행이란 결국 흔들림을 감수하며 나아가는 일이라는 건 알지만 예정된 목적지는 점점 희미해 앞이 보이지 않는다. 구름은 여전히 짙게 깔려 있고 그 안에서 방향을 잃지 않으려 애쓰지만 쉽게 중심을 잡을 수가 없다.


행복한 인생을 위해 흔들림이 꼭 나쁜 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건 내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조용히 애쓰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언젠가 맑은 하늘이 다시 열릴 날을 믿는다. 그때 나는 창밖의 푸른빛을 가만히 바라보며, 흔들림을 딛고 여기까지 날아온 나 자신을 조용히 안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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