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종종 폭죽처럼 터져야만 의미가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화려한 불꽃을 내뿜으며 하늘을 가를 때,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고 그 순간을 기억한다. 마치 삶의 가치는 얼마나 크게, 얼마나 눈부시게 터졌는가로 결정되는 것처럼.
그 빛을 올려다보며, 나는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된 불꽃을 쏘아 올리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말하는 ‘성취’라는 불꽃 없이, 나는 여전히 점화되기 전의 고요한 시간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삶이 프라이팬 위에 놓인 옥수수 알갱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열기 위에 놓여 있어도 어떤 알갱이는 순식간에 팡 하고 터져 벚꽃 같은 팝콘이 되고, 어떤 것은 끝내 터지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 있다. 겉보기엔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결과는 이토록 선명하게 갈리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팡팡 소리를 내며 화려하게 피어나는 것들 사이에서, 침묵하는 알갱이가 어쩐지 남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쓰인다. 나는 아직 ‘팡’ 소리를 내지 못한 쪽에 가깝다. 지금의 이 고요가 화려한 도약을 위한 응축의 시간일지, 혹은 열기가 닿지 않아 그대로 굳어버릴 서글픈 예고일지 몰라 나는 자꾸만 마음 끝이 서늘해진다. 어쩌면 이미 충분한 열을 통과하고도 끝내 변화하지 못하는 쪽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마음을 파고든다.
옥수수가 팝콘이 되기 위해서는 뜨거운 열을 견뎌야 하고, 폭죽이 하늘을 가르기 위해서는 짙은 어둠을 기다려야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 정적 속에서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압력과 온도로 천천히 변해가고 있다.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간의 치열했던 과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도 눈부신 불꽃을 내뿜게 될까. 아니면 끝내 조용히 남아 있다가 사라지게 될까. 답이 없는 질문 끝에서 나는 가만히 멈춰 선 채, 여전히 침묵 중인 알갱이를 다시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터지지 않은 알갱이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마지막까지 열기를 품고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얀 팝콘이 되어버린 것들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그 중심부에 뜨거운 온도를 간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이제 나는 조급히 불꽃을 꿈꾸기보다 내 안의 온도를 믿어보기로 한다. 화려하게 피어나지 못하더라도, 가장 마지막까지 열기를 머금은 채 나만의 호흡으로 인생이라는 뜨거운 프라이팬 위를 끝까지 견뎌낼 것이다. 비록 터지지 않은 알갱이로 남을지언정 결코 식어버리지는 않겠다고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