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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Jul 24. 2024

지팡이 깎던 노인, 파블리토(Pablito)

순례자를 위한 순례자  

  에스떼야 축제를 기념하는 폭죽소리가 밤부터 새벽까지 하늘에 울려 퍼졌다.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불꽃과 '펑펑' 울려 퍼지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하고, 자명종삼아 일어나 순례자들 중 제일 먼저 하루를 시작했다. 새벽 공기가 제법 쌀쌀했지만 햇빛이 없어 오히려 걷기가 수월했다.

 

 30분 정도 걷다 보니 하늘은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고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낮게 드리운 구름이 산을 가리고, 황금색 밀밭이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었다. 새우처럼 굽어있던 허리를 피고 잠시 고개를 들어 자연의 신비함을 감상하고 있을 때 장까를로가 나를 앞지르며 웃으며 인사했다.   


"부엔까미노"

"장까를로! 좋은 아침이에요. 발은 괜찮나요? 물집은요? 아침은 먹었어요?" 반가운 마음에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질문공세를 펼쳤다. 그는 이번에도 내 질문에 대답 대신 너털웃음을 치며 다시 한번 '부엔까미노'하고 길을 나섰다.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가던 그는 뭔가 생각난 듯 길을 멈추고 나에게 돌아왔고 나는 다시 인사를 건넸다.


"아란, 산티아고 3대 유명인사를 알고 있어?"

"3대 유명인사요? 성야고보 아닌가요? 아니면 하느님, 예수님, 마리아?"


장까를로는 기가 막히다는 듯 코웃음을 한번치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오는 순례자들이 길을 잘 마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3명의 유명한 분들이 계신데 운이 좋으면 만날 수가 있대."

" 오? 정말요? 저에게도 그런 행운이 올까요? "


 장까를로는 자신의 할 일은 다 했다는 듯 뿌듯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돌려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산티아고 유명인사라니 그도 직접 본 게 아니라 들은 이야기라 신뢰가 가지 않았지만 내심 유명인사를 만날 수 있는 우연한 행운이 찾아오길 바랐다. 그렇게 1시간 정도 걸었을까? 아스게따(Azgueta)라는 작은 마을 어귀에 다다랐을순백색의 옷을 입고 나무 지팡이를 한 손에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손짓으로 안으로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내셨다.


 뜻밖의 행운이 나에게 찾아온 순간이었다. 파블리토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 것이다.

파블리토 할아버지는 최초로 자전거를 이용하여 산티아고 도보순례를 하신 분이기도 하다. 1966년에 첫 번째 산티아고 순례를 시작하였는데 자전거로 6일 만에 완주하셨다고 한다.  이 경험으로 1986년부터 '순례자를 위한 순례자'가 되어 순례자에게 필요한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고 밤나무나 헤이즐 나무로 지팡이를 만들어주신다. 내가 할아버지를 만났을 당시 (2010년 8월)이미 1만여 개의 지팡이를 순례자들에게 나누어주셨다고 했다.


 파블리토 할아버지는 집 구경을 시켜주셨고 크레덴시알에 스탬프를 찍어주셨다. 그리고 우리는 뒤뜰로 갔다. 뒤뜰에는 커다란 하얀색 테이블이 있었고 그 옆에는 순례자를 위한 수십 개의 나무스틱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원래 숲에서 가지를 치는 일을 하시는데 은퇴를 하시고 순례자들을 위한 지팡이를 만든다고 하셨다. 그는 나를 쓱 한번 보더니 내 키에 맞는 나무가지 하나를 집어 쓱쓱 손질한 후 나에게 건네주셨다.


"여기(아끼, Aqui)"

"무차스 그라시아스(정말 감사합니다.) "


 나도 그에게 나무지팡이를 받은 행운의 순례자가 되었고 앞으로 스틱 때문에 꼬부랑 할머니 될 필요가 없다는 생각과 우연한 행운이 나에게 찾아왔다는 사실이 오늘 하루의 피로를 날아가게 만들었다. 지팡이가 나의 손으로 넘어왔을 때 우리는 잠시 바디랭귀지로 대화를 했다.


"지팡이는 키보다 적어도 20cm 커야 해. 그리고 오르막길에서는 가슴보다 낮게, 평지에서는 어깨 높이로, 내리막에서는 가슴보다 높게 집어야 무릎에 무리가 안가고 편하게 걸을 수 있어."

"시, 무차스그라시아스(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짧은 작별인사를 남기고 집으로 들어가셨다.


"부엔까미노."


 할아버지는 아무런 대가 없이 순례자들이 순례를 잘 마치길 기원하는 마음 하나로 지팡이를 선물하셨다. 길 위에서는 감사함과 길을 통한 나눔과 배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할아버지는 평생 순례자를 위해 삶을 바치셨다. 약 40년간 3만 5천 개 이상의 헤이즐나무와 밤나무 지팡이를 만들어 순례자들에게 선물하셨다. 순례자를 위한 진정한 순례자의 삶을 실천하신 파블리토 할아버지는 2022년 9월 하늘의 별이 되어 긴 순례를 떠나셨다.


 할아버지는 하늘에서도 길 잃은 순례자들을 위하여 반짝반짝 비추며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인도하주실 것 같다. 


"인생은 길을 바라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 (파블리토)


다시는 볼 수 없지만 그가 베풀었던 은혜와 가르침은 잊지 않고 평생 기억하여 삶이 힘들때마다 꺼내어봐야겠다.


어두운 하늘과 황금색 밀밭
웰컴투 마이 하우스
지팡이 깎던 노인 파블리토   
지팡이 사용법 알려주시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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