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색 옷을 입고 빨간색 스카프를 목에 두른 사람들, 고풍스럽고 웅장한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한데 어우러진 별의 마을 에스떼야에 도착했다. 에스떼야에서는 7월 마지막주 금요일부터 에스테야 수호신을 기리는 축제가 7일간 개최된다.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팜플로나 축제인 '산 페르민 축제(*팜플로나에서 순교당한 성인 '페르민'을 기리며 개최하는 축제)처럼 중세시대 스페인 전통의상을 입고, 달리는 소를 피하는 축제로 '리틀 산페르민축제'라고도 불린다.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니, 영화 <미드나잇인파리>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남자 주인공'길(오엔윌슨)'은 매일밤 12시 마차를 타고 1920년대로 떠나 많은 예술가들을 만났지만, 나는 스페인 중세시대로 와 사람들과 함께 축제를 즐기는 기분이 들었다.
활기찬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산타마리아교회 근처 공립 알베르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알베르게 입구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 성야고보 현판이 순례자들을 반겨주었다.
대부분의 알베르게가 그렇듯 산티아고 도보순례를 마친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한다. 알베르게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자원봉사자를 오스피딸레로(Hospitalero)라고 부르는데 에스떼야 알베르게 오스피딸레로는 50대 중반정도 돼 보이는 스페인 중년남성이었다. 축제에 참여 중인 사람들처럼 흰 반팔 셔츠와 반바지를, 목에는 빨간 스카프를 두르고 계셨다.
'쾅!' 아저씨는 크레덴시알과 함께 쪽지 하나를 나에게 건넸고 쪽지에는 'Cama39 (39번 침대)'라는 숫자가 적혀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 배정받은 39번 침대에 짐을 풀었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침대 앞에 프랑스 중년 부부가 배낭을 메고 서성이고 있었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침대로 다가가자 남편은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침대 번호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네. 그럼요.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침대 위 일기장 사이에 끼워두었던 쪽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들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에게 쪽지를 하나 건넸다. 그들이 건넨 쪽지에도 똑같이 'CAMA:39'라는 숫자가 적혀있었다. 부부는 프랑스어로 대화를 했고 부인은 나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고 남편은 잠시 사라졌다 오스피탈로 아저씨와 함께 들어왔다.
아저씨는 돋보기안경 너머로 같은 번호가 적힌 두 개의 쪽지를 번갈아 쳐다보았고 프랑스 부부와 나는 가만히 서서 그 모습만 바라보았다.그리고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아저씨는 돋보기안경을 다시 벗고 아랫입술을 깨물고 나를 쳐다보았다.
오스피탈레로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다른 침대를 가리키며 스페인어로 뭔가를 말씀하셨다. 스페인어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나는 어리둥절하여 그를 쳐다보며 멀뚱히 서있었다. 가만히 있는 내 모습에 화가 나셨는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나를 앞으로 밀치기 시작했다.
"Go! Go!"
그는 '산페르민축제' 외양간에서 막 나온 황소처럼 흥분하여 거침없이 나를 앞으로 밀었고 멈추지 않는 소란에 쉬고 있던 순례자들이 몸을 일으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원치 않게 어깨를 들썩이며 등 떠밀 리면서도 '이 사람은 산티아고 순례를 한 사람이 맞나? 본인의 실수를 왜 나한테 덮어 씌우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부부도 놀란 눈치였고 그의 행동을 말리며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로 아저씨에게 말을 했다. 아저씨는 나를 한번 노려보더니 1층으로 내려갔다.
프랑스 아주머니가 다가와 미안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괜찮아요? "
"괜찮아요. 오스피딸레로 아저씨 실수지, 제 잘못도, 아주머니 잘못도 아니잖아요. 여기 쓰세요. 전 새로 지정해 준 침대로 옮길게요. 아! 근데 제가 스페인어를 못해서 그러는데 몇 번 침대인가요? "
불쾌한 기분을 내색하지 않으려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사실 괜찮지는 않았지만 순례자들끼리 얼굴 붉힐 필요는 없어 괜찮아야 했다. 부부도 전후 사정을 확인하러 내려갔던 것뿐이었으니까.부정적인 감정의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향해서는 안되니까. 하지만 아저씨의 무례한 태에 억울하고 속상한 기분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니에요. 제가 옮길게요. 늦게 오기도 했고 아직 짐도 안 풀었으니 제가 옮기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아주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다른 침대로 이동했고, 나는 '39번', 프랑스 아저씨는 내 위층 침대인 '40번'침대를 배정받았다. 침대에 누워 낮잠을 자려고 했지만 억울함과 동시에 부부를 생이별하게 만든 것 같은 미안함에 잠도 오지 않았다. 도무지 기분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시내로 나갔다. 축제의 열기를 느끼며 장도 보고 맥주도 마셨더니 기분이 한결 나아진 상태로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앉아 침낭을 펴고 다음날 순례를 준비하며 발바닥에 바셀린을 바르고 있었다. 꼼지락 거리는 소리에 프랑스 아저씨가 2층에서 내려와 내 앞에 서서 사과를 하셨다.
"아까는 많이 놀랐죠? 미안해요."
기분이 불쾌했던 것은 아저씨 때문이 아니었다. 내 잘못이 아닌데 내 잘못이 된 상황이 억울했고, 다른 순례자들이 그 해프닝을 지켜보는 상황이 수치스러웠다. 스페인어도 못해서 대꾸도 못하고 멍청하게 가만히 서있는 내가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아니에요. 아주머니께도 말씀드렸는데 우리 잘못이 아닌걸요? 그러니 더는 신경 쓰지 마세요."
아저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으며 통성명을 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내 이름은 '기', 와이프는 '마리' 에요. 우리는 마르세유에서 왔어요. 여름휴가 때마다 오는데 휴가가 짧아 올해도 완주를 못할 것 같아요. "
"저는 한국에서 온 아란이라고 해요. 지금은 아일랜드에서 영어 공부 중이에요 "
아저씨와 대화하는데 저 멀리 마리가 방긋 미소 지은채 내쪽을 향해 걸어왔다. 마리 아주머니에게 한 번 더 나를 소개했다.
악연이 되어 얼굴을 붉혔을 수도 있지만 사려 깊은 마리와 기 덕분에 전화위복이 되어 산티아고의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마리와 기,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