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과 머핀, 오렌지주스, 머핀, 콜라카오(핫초코).달달한 스페인식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니 새벽 차가운 공기가 내 안으로 들어와 짧은 기침이 나긴 했지만 정신은 맑아져 반가웠다. 노란 화살표를 따라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지나니 멋진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일렬종대로 길게 늘어선 포도밭 위로 구름이 낮게 깔리고 은은한 주황색 빛이 서서히 푸르런 하늘을 덮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아침을 일찍 맞이하는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는 자연의 선물이 아닐까?
초여름의 싱그러움을 닮은 완연한 포도밭을 지나 2시간 정도 걸으니 스페인 햇살이 강렬하게 정수리를 강타했다. 이마에서 흐르기 시작한 땀은 턱까지 내려와 송골송골 구슬 같은 땀방울이 맺혔고 갈증으로 입이 바싹바싹 타들어 가며 목마른 사슴이 되었다. 1킬로 정도 더 걸으니 드디어 스페인 특유의 황톳빛 석조로 만든 식수터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눈앞에 나타났고 물이 쫄쫄 흐르고 있었다.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허리를 굽혀 물을 받으려고 할 때 한 순례자가 나를 막아섰다.
"Non potable agua!(논 포타블레 아구아)"
'치코말로'의 아픈 기억이 떠오르면서 허리를 피고 서서 그를 째려봤다. 나의 따가운 시선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식수터를 한번 가리킨 후 두 팔을 엑스자로 교차시키며 "NON. POTABLE AGUA!" 또박또박 다시 말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퍼즐 맞추기를 시작했다.
'뭐가 안되기는 안되는 건데.. 아구아.. 아구아=아쿠아(aqua), 포타블레.. 포타블레=포타블(potable).. 아! 마실 수 없는 물이라는 뜻이구나.' 그제야 석회질이 들어있어 마시면 탈이 날 수도 있다는 말뜻을 이해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석회질 들어있는 물을 마시고 배탈이 나 순례를 일찍 접어야 했을 수도 있었다.
"감사합니다.(무차스 그라시아스.)"
"De na da(데 나다, 별말씀을요.)
이탈리아 순례자 '로쵸' 아저씨와의 첫 만남이었다.
산티아고 길을 걷다 보면 어제 만난 사람을 오늘 만나고, 오늘 만난 사람을 내일 만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알베르게에 묵으면서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어 함께 걷기도 한다. 나는 한국인 선생님과 마리&기 커플과 함께 동행을 하게 되었고 우리는 와인으로 유명한 도시 비아나(VIANA)에 도착했다. 다른 스페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무어인과 로마인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으로 크지는 않지만 다양한 문화와 와인이 있는 역사적 도시다.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르네상스, 고딕, 바로크 등 다양한 양식의 역사적 건축물들을 볼 수 있었다. 골목골목이 아름다웠고 곳곳에 '숨겨진 성야고보'를 찾는 재미도 쏠쏠했다.
다음 마을로 가기 전에 지나치기엔 아름다운 산타마리아교회에 들어갔다. 종교는 없지만 교회로 들어가 웅장하고 경건한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가족을 위한 기도를 드렸다. 순례를 시작한 지 고작 1주일이 채 되지 않았지만 길과 많은 분들의 사랑을 통하여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을 매일 조금씩 떨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에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드리고 다시 길을 걷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돌아본다. 라라소냐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던 룩셈부르크 바이올리니스트 캐롤린이었고 우리는 반가움의 허그를 했다. 깊은 포옹을 하고 순례자 인사 레퍼토리를 캐롤린에게도 건넸다.
"캐롤린!! 오랜만이야. 발 괜찮아? 물집은? 밥은 먹었고?"
캐롤린은 나의 인사에 웃기만 하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생긋 웃는 그녀를 보니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의 한마디에 다시 시무룩해졌다.
"아란, 나 카미노를 포기하게 됐어."
"그게 무슨 말이야? 포기라니? 어디 다친 거야?"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고 묻는 내게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웃으며 말했다.
"아니, 라라소냐에서 봉사활동하는 오스피탈레로 기억나? 그 사람 만나러 거기에 가려고 해. "
"숙소에서 뭐 놓고 온 거야? " 나의 대답에 캐롤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어갔다.
"라라소냐에서 저녁먹고 잠깐 이야기를 해봤는데 생각이 깊고 말도 잘 통하더라고. 혹시 내 평생의 반려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더라? 카미노는 내년에도 할 수 있지만 이런 기회와 감정은 흔하게 오는 게 아니라서..."
그녀는 부끄러운 듯 말끝을 흐렸다.
그녀를 길 위에서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슬프긴 했지만 그녀 인생의 길에서 동반자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건 굉장한 일이며 축하받아 마땅했다. 우리는 축하와 아쉬움의 허그를 나누고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그녀는 그와 결혼했고 2013년 서울에서 열린 그녀의 연주회에서 그녀의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녀를 뒤로하고 로그로뇨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빨래를 하고 저녁을 먹으러 공용 주방으로 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많은 순례자들이 식사를 하고 계셨고 선생님과 나도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저녁을 먹기 시작했는데 내 얼굴에 가난이라도 묻은 걸까? 아니면 사람들에게 인사를 할 때 꼭 밥 먹었냐는 '꼬미다 (식사, comida)'를 외치고 다녀서 그랬던 걸까? 처음 보는 스페인 커플은 과자를, 호주 커플은 올리브를, 마리&기는 토마토와 요구르트를 주셨다. 음식보다 더 큰 사랑과 정이 오가는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저 멀리 대각선에는 물을 마시면 안 된다고 알려준 순례자 아저씨가 장까를로와 함께 식사를 하고 계셨다. 아저씨 이름은 로쵸였고 이탈리아 남부 출신이라고 하셨다. 장까를로는 와인을 권했고 나는 자연스럽게 컵을 내밀었다. 와인 한 모금을 홀짝이며 그가 먹는 빵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게트 위에 멸치라니, 직접 만드신 거예요?"
"당연하지. 이게 보기에는 이래도 맛은 아주 좋아."
"맞다. 아일랜드에서 만난 이탈리아 친구가 이탈리아 남자들은 다 요리를 잘하다고 하는데 맞나요? "
(쳐) 맞는 말일 수도 있었지만 호기심 어린 모습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장까를로는 로쵸에게 통역을 해주었고, 로쵸는 이탈리아어로, 다시 장까를로가 영어로 나에게 말해주었다.
"내일 나헤라 알베르게에서 만나면 저녁에 파스타를 만들어줄게. 그때 직접 평가해 보는 건 어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