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도밍고 알베르게는 기부제로 운영되는 알베르게였다. 그동안 묵었던 알베르게 중 단연 돋보이는 시설을 자랑했다. 모던한 분위기의 알베르게는 순례자들을 위한 아늑한 휴게실과 자전거 순례자들을 위한 자전거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픈 곳이 있다면 간단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응급처치실과 함께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있는 미니예배당까지 있었다.
169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었지만 약 8개의 방에 10개의 이 층침대가 비치되어 있어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방에 들어섰을 때 침대 위에 올려진 깔끔한 이불이 나를 반겼다. 30cm 정도 떨어진 옆 침대에는 30대 초반의 남자 순례자가 쉬고 있었다. 앞가르마 사이로 드러난 넓은 이마와 각진 턱을 가진 그는 네모난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고, 그의 볼에는 파란 수염자국 위로 몇 가닥의 샤프심 같은 수염이 나 있었다. 네모난 뿔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갈색 눈동자는 밝고 선해 보였다. 낯선 이에게도 꼬리를 살랑거리는 강아지처럼 옆 침대에 앉아있는 그에게 다가가 소개를 하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이름은 아란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장까를로와 로쵸에게 배운 짧은 스페인어를 총동원하여 그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그는 나를 한참 노려보다 억지로 대답했다.
"나는 마드리드에서 왔어요."
그의 퉁명스러운 말투에는 피곤함과 짜증이 가득 담겨 있었다. 어쩌면 힘들고 지쳐서 대화할 기력조차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기로 마음먹고, 사다리를 타고 이층 침대로 올라갔다. 침낭 속에 들어가 엎드려 일기를 쓰고 있는데 그가 침대에서 내려와 나에게 퉁명스럽게 말을 걸었다.
"왜 걷는 거예요? "
'드디어 마음의 문을 열었구나.' 여느 순례자들의 질문과 다를 바 없는 그의 말에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파울로코엘료와 아일랜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듣는 동안 눈썹을 추켜올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도전적인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정말이지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스페인까지 와서 기껏 하고 싶었던 일이 도보순례라고요? 바르셀로나 가우디 성당도 있고, 그라나다 알람브라궁전도 있잖아요. 무거운 가방을 메고 볼 것도 없는 스페인 시골 마을을 30일 동안 걷겠다는 게 정말 하고 싶다고요? 당신은 지금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게 아닌가요? 그리고 이 길을 걷는다고 해서 당신 인생이 바뀔 것 같나요? 이까짓 길이 뭐라고 자아를 여기서 찾으려는 건지, 난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아요. 난 아니라고 봐요."
그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언성이 점점 높아지며 나를 몰아붙였다. 그의 목소리는 천둥처럼 온 방에 울려 퍼졌다. 나는 얼굴이 점점 붉어지며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고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단지 인사를 건넸을 뿐인데 나는 도대체 뭘 그리 잘못했을까? 초면에 왜 이렇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일까? 순례를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같은 순례자 신분으로 순례를 하는 중일 텐데 왜 이해가 되지 않는 걸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그의 무례함에 마음이 몹시 상했지만 애써 불쾌한 감정을 억누르고 깊은 한숨을 한번 내뱉었다. 나를 노려보는 사각 뿔테 안경 뒤의 갈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억지웃음을 짓고 담담한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실 수는 없을까요? 사람마다 생각과 성격이 다르듯, 저마다의 이유가 존재하니까요. 저도 그렇고요. 그리고 아저씨 말처럼 이 길을 걷는다고 해서 제 인생이 크게 바뀌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바뀔 수도 있죠. 아저씨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제 가능성을 꺾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는 내 말을 듣고 더욱 화가 난 듯,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바보같이 헤헤 거리며 실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웃던 동양 여자애가 갑자기 두 눈 똑바로 뜨고 자신의 말을 되받쳤으니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그는 대답 대신 붉어진 얼굴을 한 채 방을 나가버렸다. 그가 다시 침대로 돌아온 인기척을 느꼈고 나는 침낭 속으로 몸을 숨기고 자는 척했다. 그와의 거리는 고작 30cm밖에 되지 않았지만 심리적인 거리는 300km에 달하는 듯하여 불편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야 했다.
다음날, 스페인 출신 로맨티시스트 호세와 함께 걸으며 전날의 일들을 털어놓았다. 호세는 그가 자격지심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아란,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도보순례는 몇몇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부담이 되는 길이야.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뿐만 아니라 이선생님이나 너처럼 한국에서 순례를 하겠다고 장거리 비행도 마다하지 않고 오잖아."
그의 말이 내게는 잘 와닿지가 않았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한 박자 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머나먼 타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카미노데산티아고를 위해 스페인에 오잖아. 다른 나라에서 오는 순례자들을 면 경외감을 느끼면서도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밀려오기도 하지. 나도 그랬거든. 막상 순례를 시작하니 생각이 달라졌지만 순례를 하기 전에는 정말 부담감이 컸어."
"그렇구나." 호세의 이야기에 이해한 척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친절한 호세는 내 걸음에 맞춰 함께 걸으면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아란, 'PIGS' 들어봤어? "
2010년, 유럽은 국가 부채 위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이 네 나라는 경제적 불황의 어두운 그림자에 짓눌려 있었다. 그 시기, 아일랜드에서 공부 중이었던 나는 브라이언을 통하여 스페인과 아일랜드에 경제위기가 닥쳤다는 사실을 알게 있었다.
"네, 들어봤어요."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스페인은 요즘 경제위기로 인해 취업이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들어 원래도 어려웠지만 요즘엔 유독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아."
호세는 씁쓸하게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산티아고랑 취업난이랑 무슨 상관이 있을까?' 속으로 생각했다.
"음.. 산티아고 순례 완주 증명서가 있으면 스페인에서 취업하는데 가점으로 적용되기도 해. 같은 조건이라면 아무래도 '산티아고 도보순례' 경험자가 우대받지 않을까? 스페인이 가톨릭국가인만큼 스페인의 수호성인 '성야고보'가 걸었던 순례길이 은연중에 사회 깊숙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까. "
호세는 나의 눈높이에서 설명해 주었다. 생계가 달린 사람한테 문화는 사치로 느껴지듯 취업을 위해 억지로 걷는 사람에게 '자아성찰, 파울로코엘료'를 운운하며 걷는 나의 모습이 복에 겨운 소리로 들릴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의 입장에서 조금은 이해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무례한 언행과 행동까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지, 마드리드아저씨가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 도착했을 때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한국에서 온 철없는 순례자는 감히 그의 행복을 기원하며 기도를 올렸다. 산티아고의 긴 여정의 끝에서, 그가 진정한 행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성야고보가 이끌어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