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안우르테가에서 부르고스까지 가는 길은 험한 코스 중 하나로 손꼽힌다.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돌로 된 산을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며 걷다가 오스트리아 공주 크리스티나를 만났다. 빨간 곱슬머리, 하얀 뺨에 주근깨가 가뭇한 것이 빨강머리 앤을 생각나게 하는 크리스티나. 만나면 항상 반가운 얼굴로 서로의 안부를 묻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친구라 알베르게에서 만나기엔 하늘의 별따기였다. 1주일 짧은 여름휴가동안 그녀는 올해는 부르고스까지 걷고 내년에 부르고스에서 다시 카미노를 시작한다고 했다.
함께 걷던 10명의 순례자들은 부르고스 전 마을에 도착하여 크리스티나와 걸음이 느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르고스로 가기 위한 발걸음을 떼니 이탈리아 로쵸 아저씨가 막아서며 버스를 타자고 하셨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아주 험 해 걷기가 어려워 버스를 타고 부르고스까지 갈 거야."
진정한 순례란 길의 험난함 여부와 상관없이 성야고보처럼 이 길을 온전히 걸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로쵸아저씨 말이 일리는 있지만 '온전히 걷지 않는다'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이 들어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겁쟁이었던 나는 군중심리에 휘말려 불편한 마음과 함께 버스에 올라탔다. 크리스티나도 함께 부르고스행 버스에 올랐지만 역시 그녀는 마지막까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순례자였다.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시민들의 틈에 끼어 갑자기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그녀는 창밖에서 손을 흔들며 웃으며 작별인사를 했다. 작별이라는 의식이 싫어 허를 찌르는 이별을 선택했던 것일까?
그녀와 헤어지고 부르고스에 입성했다. 부르고스도 대도시는 아니지만 평소 걷던 마을보다는 확실히 규모가 크고 인구도 많은 도시였다. 부르고스대성당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로 아름답고 스페인 고딕 건축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여러 건물들 사이로 가려졌던 부르고스대성당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는데 숨 막힐 정도로 웅장하고 정말 아름다웠다. 그 자리에 서서 입이 떡 벌어진 채로 성당을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자우마였다.
두 명의 자우마와 토니는 삼총사처럼 늘 함께 걸었다. 한 번은 그들과 함께 대화를 하며 걸은 적이 있었는데 걸음이 워낙 빨라 한 시간 만에 포기한 적이 있다. 두 자우마는 동서지간이었고 토니는 그들의 친구였다. 한 자우마가 매일 들고 다니는 나무지팡이에는 아들의 키와 나이를 표시해 두었는데 바람직한 자상한 아버지의 표본이었다. 다정한 자우마 아저씨들도 부르고스를 끝으로 순례를 끝낸다고 했다.
"아란, 우리는 오늘 마드리드로 돌아가."
아저씨들은 나보다 10리는 앞서서 걸어 마주칠 일이 거의 별로 없었고 걸음이 빨라 알베르게에서 오며 가며 뻔한 안부를 물으며 같이 식사를 했던 게 다였는데 와락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저씨. 오늘은 이별하는 날인가 봐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부엔 까미노."
"네 미소를 잊지 않을게. 부엔까미노."
우리는 눈물을 감추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이별 사진을 찍었다. 아저씨들은 버스터미널로, 선생님과 나는 대성당 근처에 있는 공립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고 거실에 앉아 일기를 쓰고 있는데 프랑스 사라와 실비아가 다가왔다. 사라와 실비아는 모녀가 함께 카미노를 걸었는데 여름휴가가 짧아 다시 파리로 돌아간다고 했다.
"아란, 내일 우리는 파리로 돌아가."
아직 해가 중천인데 예상치 못한 이별을 이미 두 번이나 경험한 나는 감당하기 조금 버거웠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슬픔이 가득 찬 눈으로 그녀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어떤 위로의 말로도 그녀의 심정을 다 헤아릴 수 없을 것 같았고 그녀를 안아주었다.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공용거실에 앉아 사라와 대화를 했고그녀는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나에게 복숭아 하나를 건넸다. 그녀의 "파리에 놀러와" 한마디와 부르고스 지도로 접은 작은 종이학 한마리가 우리의 비공식적인 작별 인사가 되었다. 그리고 알베르게 문이 열리고 로맨티시스트 호세와 그의 아내 루시아나가 들어왔는데 두 사람 모두 표정이 좋지 않았다.
"루시아나, 무슨 일 있어요?"
"병원에 갔는데 루시아나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더 이상 걸으면 안된대. 그래서 우리는 내일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로 가야 할 것 같아. "
호세가 루시아나를 대신하여 대답했다.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호세와 루시아나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는데 루시아나는 고개를 무겁떨구었고 호세는 애써 슬픔을 참으며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로맨티시스트 호세는 큰오빠처럼 자상했다. 그에게 받은 건 많은데 나는 준 것도, 갑작스러운 이별에 줄 것도 없었다. 나의 스페인어 선생님이기도 하고 밥 먹을 때마다 식사기도를 해주었던 호세. 그가 알려준 'Hasta Luego'는 더 이상 그에게는 할 수 없는 인사가 되어버렸다.
어학연수를 하면서 많은 친구들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헤어짐에 익숙한 줄 알았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나 보다.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하릴없이 멈추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길을 나서는 순례자들을 향하여 호세, 루시아나, 사라가 알베르게 앞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부엔 까미노. Hasta Luego!"
그들을 뒤로하고 산티아고로 한걸음 내디뎌야 했지만 발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슬픔 속에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성이다 산티아고를 향하여 겨우 한걸음을 내디뎠다. 아쉬움에 뒤를 돌아봤을 때 그들은 우리를 향해 계속 손을 흔들고 있었다.